[연예 = 하이코리언뉴스] 장마리아 기자 = 미국을 대표하는 컨트리 음악의 전설이자 배우, 사업가, 자선가로 활동하며 세대를 초월한 사랑을 받아온 돌리 파튼(Dolly Parton)이 25일(화) 향년 80세로 별세했다.

파튼의 가족은 이날 그의 별세 소식을 발표했다. 파튼은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으며, 구체적인 사인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유가족은 가까운 가족들만 참석하는 비공개 장례식을 치를 예정이라고 밝혔다.
1946년 1월 19일 테네시주 로커스트 리지(Locust Ridge)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파튼은 12남매 가운데 넷째로 성장했다. 가족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산골의 작은 통나무집에서 생활했고, 어머니 아비 리(Avie Lee)는 교회 음악과 전통적인 산악 민요를 딸에게 가르쳤다.
파튼은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서 노래를 부르며 음악적 재능을 드러냈다. 10세 무렵부터 지역 방송에 출연했고, 13세였던 1959년에는 컨트리 음악의 성지로 불리는 그랜드 올 오프리(Grand Ole Opry) 무대에 처음 올랐다. 당시 무대에서는 조니 캐시가 파튼을 소개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18세에 내슈빌로 향한 파튼은 본격적으로 작곡가이자 가수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포터 왜고너와 함께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고, 1960년대 후반부터 솔로 가수로도 성공을 거두며 컨트리 음악의 대표적인 여성 스타로 자리 잡았다.
파튼의 가장 큰 강점은 뛰어난 가창력뿐 아니라 직접 곡을 쓰는 작곡 능력이었다.
그가 작사·작곡한 ‘Jolene’, ‘Coat of Many Colors’, ‘I Will Always Love You’ 등은 컨트리 음악을 넘어 미국 대중음악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I Will Always Love You’는 파튼이 직접 작사·작곡해 1974년 발표한 뒤, 1992년 휘트니 휴스턴이 영화 ‘보디가드’에서 리메이크하면서 세계적인 히트곡으로 다시 태어났다.
한국에서도 파튼은 영화 ‘나인 투 파이브(9 to 5)’의 주제가로 널리 알려졌다. 1980년 영화에 직접 출연하면서 부른 ‘9 to 5’는 직장인들의 반복되는 일상과 애환을 경쾌하게 풀어낸 곡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파튼은 음악을 넘어 할리우드 배우와 성공적인 사업가로도 활약했다. ‘9 to 5’를 비롯해 ‘철목련(Steel Magnolias)’ 등 여러 영화에 출연했으며, 테네시주에 대형 테마파크 **돌리우드(Dollywood)**를 조성해 지역 관광산업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음악보다 더 오래 남은 ‘나눔의 유산’
파튼을 특별한 미국의 국민적 스타로 만든 또 하나의 이유는 꾸준한 사회공헌 활동이었다.그는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책을 보내주는 "돌리 파튼의 이매지네이션 라이브러리(Imagination Library)"를 설립해 아동 문해력 향상에 힘썼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는 백신 개발을 위해 100만 달러를 기부하는 등 의료·교육 분야에서도 적극적인 기부 활동을 펼쳤다.
이 같은 행보 덕분에 파튼은 컨트리 음악의 전통적인 팬층을 넘어 젊은 세대와 다양한 인종·문화권의 팬들에게까지 사랑받았다. 정치적 성향이 다른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폭넓은 호감을 얻은 보기 드문 대중문화 인물이었다.
파튼은 10차례 그래미상을 수상했으며, 컨트리 음악 명예의 전당과 로큰롤 명예의 전당 등에 이름을 올렸다. 60년이 넘는 음악 활동을 통해 1억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파튼의 별세 소식에 애도를 표하고 미국 국기를 조기 게양하도록 지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튼을 “이 시대 최고의 컨트리 가수”로 평가하며 그의 죽음은 수백만 명에게 큰 손실이라고 추모했다.
파튼은 생전 자신의 음악과 인생에 대해 꾸준히 꿈과 노력, 가족, 신앙, 그리고 나눔을 강조해왔다.가난한 애팔래치아 산골에서 출발해 세계적인 스타가 된 그의 삶은 단순한 성공 신화를 넘어, 미국 대중문화가 가진 다양성과 포용성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남게 됐다.
"컨트리의 대모" 돌리 파튼.
그녀가 남긴 노래와 이야기는 이제 한 시대를 넘어 미국 대중음악의 역사로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