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카고에서 범죄율이 급증하며 초비상이다.
미국에서 3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인 시카고에서는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1분기 동안 살인 사건이 전년도에 비해 72%, 총기 사건은 88%가 증가했다. 지난해 1분기동안 82건의 살인사건이 있었는데 올해 1분기에는 141건이 있었고 총기 사건은 지난해 1분기677건이 발생했는데 올해 1분기에는 359건이 있었다.
주요 언론들은 시카고 범죄율 급증을 헤드라인으로 다루고 있고 램 임마누엘 시카고 시장 등 시당국은 기자회견을 열고 대책을 발표하며 진정시키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시카고 경찰은 급증한 살인과 총격 사건이 주로 시카고 남서부 지역의 가난하고 마약 밀매가 잦은 우범지역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갱들에 의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지난 3년동안 같은 기간에 시카고에서 평균 67건의 살인 사건이 발생했는데 올해 갑자기 살인사건이 141건이나 발생하며 2배 이상 늘어난 이유를 두고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것은 급격히 줄어든 경찰의 길거리 불심검문(Stop and Frisk)이다.
불심검문은 경찰이 길거리에서 무기나 마약소지 등 범죄 의심이 상당히 가는 사람을 멈춰세워 검문하다 몸수색까지 하는 활동을 말한다. 1968년 연방대법원의 합헌 판결을 받은 불심 검문은 경찰의 고유업무로 자리매김해왔다. 경찰의 이 길거리 불심검문이 시카고에서는 올해 초 급격히 감소했다. 시카고 경찰에 따르면 지난 1월 경찰이 시카고 길거리에서 불심검문을 한 경우는 총 9,044 건이었다. 전년도인 2015년 1월 경찰이 실시한 총 61,330건의 불심검문의 약 1/7 불과한 것으로 말그대로 대감소다.
범죄혐의자 체포율도 급감해 지난 1월 시카고 경찰이 범죄혐의로 체포한 경우는 6,818건으로 전년도(10,000건)에 비해 32%가 감소했다.
시카고에서 경찰의 불심검문이 올해 급감한 까닭은 지난해 8월 시카고 경찰이 인권단체인 ‘미국시민자유연맹(ACLU)’과 맺은 협정 때문이다. ACLU는 시카고 경찰들이 길거리 불심검문을 할 때 흑인 혹은 히스패닉 등 소수 인종에 불균형적으로 집중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ACLU는 보고서를 통해 시카고 전체 인구의 1/3을 차지하는 흑인들의 72%가 불심검문을 당했다며 인구 수를 볼 때 흑인 등 소수인종이 과도하게 불심검문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ACLU는 지난해 5월부터 8월까지 시카고 경찰이 한 불심검문 중 25만건은 검문당한 사람을 체포하지 않고 그대로 보냈다며 지나치게 많은 사람을 검문하는 공권력 남용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비판 가운데 경찰의 불심검문을 인권침해 쪽에 비중을 두고 보았던 임마누엘 시장(민주당) 등 시당국은 ACLU 보고서를 근거로 시카고 경찰의 불심검문을 제약하는 협정을 지난해 8월 ACLU와 맺은 것이다.
협정 내용은 경찰들이 길거리에서 불심검문할 사람을 정할 때 인종, 성(性), 동성애자*성전환자와 같은 성적(性的) 지향 등은 고려하지 말고 무기소지 등 범죄가 의심될 때만 몸수색을 하도록 하며 경찰은 불심검문 후 그 내용을 상세히 기록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 협정은 올해 1월부터 발효가 되었고 그때부터 경찰의 길거리 불심검문은 급감하였다.
불심검문 급감 이유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 시카고 경찰들이 불심검문한 후 기록해야 하는 이른바 ‘불심검문 보고서’다. 그전까지 시카고 경찰들은 불심검문을 한 사람의 이름과 연락처 등을 간단히 적은 ‘연락 카드’를 기록했었다. 하지만 ACLU협정에 따라 올해부터 경찰은 불심검문을 하면 2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써야 한다. 매번 의심되는 사람을 길거리에서 불심검문하고 이에 대한 2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쓰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려 경찰들에게 골치아픈 일이 되버렸다. 그 결과 경찰들의 길거리 불심검문의 수는 줄어들었고 경찰의 다른 치안활동 감소로 이어지며 범죄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ACLU는 불심검문 감소와 범죄 증가 사이에 직접적 상관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고 시카고 경찰은 현재로서는 관련성이 없다는 쪽으로 애매한 입장을 표하고 있다. 시카고 보다 경찰의 불심검문을 먼저 제한한 뉴욕시 경찰의 상황을 보면 상관 관계가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뉴욕시에서는 2014년 발 드 블라시오 현 뉴욕시장이 취임하면서 경찰의 불심검문이 제약되기 시작했다. 민주당의 블라시오 시장은 경찰의 불심검문 제약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다. 흑인, 히스패닉 등 소수인종을 겨냥한 인종차별적 성격이 강하다는 이유에서다. 그 결과 블라시오 시장이 취임한 2014년 뉴욕 경찰이 길거리에서 한 불심검문 총수는 47,412 건이었다. 2011년 불심검문 총 수가 694,482인 것과 비교할 때 대폭 줄은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불심검문 수 감소와 함께 범죄인 체포 등 경찰의 다른 치안활동도 줄었다는 것이다.
뉴욕시가 체포, 주정차 및 운전 위반, 범죄인 법원소환 등의 이유로 통지서를 발급한 경우는 2011년 최고 263만건이 이었는데 2014년에는 182만건으로 줄었다. 반면, 범죄율은 증가해 2014년 첫 5개월동안 살인 사건이 19.5% 증가했고 총기 사건은 9%가 늘었다.
경찰 고유의 치안업무인 불심검문이 소수인종의 인권을 침해한다며 제약하자 경찰의 사기가 꺽이면서 다른 치안활동도 줄고 그 결과 범죄가 늘고 있다는 것이 뉴욕의 사례였고 이번에 시카고를 통해 재확인되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의 불심검문은 ‘깨진 창문 이론(Broken Window Theory)’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론의 내용은 이렇다. 깨진 창문이 있는 건물은 그 자체로는 위험이 아니다. 하지만 깨진 창문으로 강도가 들어오고 노숙자들이 들어와 낙서를 하게 되면서 건물은 나중에 범죄의 소굴이 된다는 것이다.
작은 범죄를 내버려두면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된다는 것으로 경찰이 의심이 가는 사람을 불심검문을 통해 무기가 있는 지 확인해 사전에 제거하는 것이 나중에 총기 사건으로 이어지는 위험을 제거하는 예방책이라는 논리다.
이 이론은 1990년 루디 줄리아니 뉴욕시장 당시 윌리엄 브랜톤 뉴욕 경찰국장이 뉴욕시에 적용하면서 유명해졌다. 당시 뉴욕경찰은 이 이론에 따라 무임승차, 공공장소에서 술먹는 것, 노상방뇨, 낙서 등 경범들을 집중단속했다. 그 결과 살인, 강도 등 중범들도 감소해 효과가 입증되었다.
하지만 소수인종의 인권을 침해한다며 공권력을 무력화하는 정치인들로 인해 ‘깨진 창문이론’은 폐기되고 있다.
뉴욕시 의회는 지난 1월 노상방뇨, 공공장소에서 술마시는 것 등은 처벌 대상이 아니라며 체포하지 말라는 법안을 마련했다. 이 경범죄로 처벌받는 사람들 다수가 흑인, 히스패닉 등 소수인종이라며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하지만 뉴욕시 경찰국은 경범죄자에 대해 체포권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법 집행이 크게 어려워질 수 있다고 경고하며 체포권 자체는 유지해야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욕시 노숙자들은 노상 방뇨에 대한 처벌 수준을 낮추는 이 법안을 두고 블라시오 뉴욕 시장을 칭송하고 있다.
한 노숙자는 "우리 노숙자들에게 관용을 베풀어준 드 블라시오 시장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이전보다 처벌받지 않고 무사히 풀려나기가 쉬워졌다. 시장 덕분에, 나를 성가시게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졌다"고 한 언론에서 밝혔다. [케이아메리칸 포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