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풍진 변호사]"한국과 일본의 숙명적인 관계 "

Submitted byeditor on토, 07/04/2026 - 13:23

[칼럼 = 하이코리언뉴스] 편집국 = 오랜만에 일본을 여행하고 이제 막 귀가했다.  인상적인 것이 비행장부터, 기차정거장, 주요 전철역에, 안내공문이 일본어, 영어, 그리고, 한국어, 이렇게 세국가의 글이었다. 나로서는 반갑고도 놀라웠다. 알고 보니 년 4천만 관광객중 ¼ 인 즉 1천만명이 한국인이라고 한다. 여하튼 일본이 공공 안내서에 한국어를 사용한다 함에 나같은 기성세대의 한국인은 엄청 기뻣다.     

"

나의 이번 여행은 젊은친구,어린 아이들과의 동행이었는데, 그저 쇼핑, 쇼핑, 쇼핑으로, 지저분한 잡동사니들 사 재키는게 일정이었다.  내 나이또래와 동행한 여행하고는 너무 달랐다. 우리 황혼기의 여행은, 우선 세끼를 잘 챙겨먹고, 음악회와 지역 뮤지엄 방문이 주목적이었지, 잡동사니는 거저 준대도 단연코 사양할거다. 

일본사람들의 월등한 상술인지, 관광객들의 깊숙한 어리석음인지, 어느 상점이어도 붐비어댔고, 출구 계산대들 앞에는 하루종일 장사진이었다. 상점직원들은 하나같히 공손하고, 상냥하고, 예의가 깍듯했다. 영어도 다들 잘했다. 일본에서는 영어를 모두 못한다는 말에, 공연한 걱정을 한때 했었다.   

역사적으로도 일본과 한국은 많은 공통점이 있다. 그러다가 아주 미미한 차이로 한국은 일본한테 수치의 역사를 여러번 당했고, 결국 국가의 주도권을 뺏기는 굴욕도 당했다.  최근에는 양국가의 국력이 막상막하로 보이는데, 과거지사를 되씹으며 구태여 일본을 우리 앞에 무릎굽히라는 요구는 필요없다고 본다. 서로 도우면서 공존하는 관계가 우리의 미래이다.  하긴 최근의 추세는 과반수 이상의 한인인구가 일본을  우호적으로 본다고 한다. 일본 적대시의 역사는 문이 닫히고 있나보다.      

아시안 연구학자들에 의하면 한국인은 중국인보다 일본인과 더 가깝다고 한다. 그건 종족의 유전인자 뿐이 아니라, 문화적으로와 언어적으로 가깝다고 하며, 나도 개인적으로 이 학설에 공감을 갖는다. 허나, 우리 조상들은 중국에 꼼짝 못하고 지내왔고, 일본은 마냥 무시해왔다.  이것도 숙명적인 일이었지, 우리가 자유로 선택한것은 아니라고 본다. 

세계 역사의 커다란 사건은, 15세기 말엽부터, 유럽의 세력이 금은 보화를 찾으러 온지구상을 휩쓸고다니는 일이었다. 그들은 과연 엄청난 금은보화를 남미에서 착출해갔고, 16세기 중엽에는 일본까지도 왔다. 일본에서, 그들은 금은보화는 못찾고, 기독교 전파에 몰두하였다.  바로 이때에 일본은 서양의 무기기술을 배워놓고 한국의 습격을 계획했다.  

단단한 군사훈련에 신무기인 총을 들고 쳐들어온 일본군을, 우리 조상들은 오로지 돌맹이로 대응하면서 참사를 당했다. 그것이 1592년의 임진왜란이었다.  일본한테서 갖은 수모를 당하고도, 우리 조상들은 계속 중국만을 섬기기에 바뻤다. 일본보다 중국이 더 큰 위협이었던 것이 우리의 숙명이었다. 

중국과 일본사이에 끼어있는 우리나라는 그 두나라를 견제할 능력은 없었다. 행여나 우리 조상들이영특하고 날렵하고 혜안이 밝았다면 모르지만, 사실 이조 말엽의 국가 지도자이었던 왕들은 줄줄이무능하고 나약했고, 한 국가를 끌고나갈 능력은 전무이었다.  반면, 국력팽창에 혈안이 되어있던 일본에게 우리의 모든걸 뺴았겼던 것은 누구도 짐작할수 있었던 숙명이었다.

지구본을 보아도,  한국과 일본은 넓은 지구에서 외진곳에 가까히 자리잡은 작으마한 두나라이다. 일본은 한국보다 더 외롭게 오로지 한국만이 이웃의 나라이었다. 이러한 지리적인 여건이 우리 역사에많은 영향을 끼쳐왔고, 두 나라는 피치못할 갈등과 적대시를 겪었다.  우리의 역사는 필연의 결과이었지 우연은 아니었다.  

쓰라렸던 과거를 뒤로 접어놓고 또 적대시 만이 생존의 길이 아님을 깨닿고, 현재와 미래를 구상함이 우리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돌이켜보니 모든것은 숙명이었으니, 아픈 역사는 뒤로하고 미래를 보기 바란다.   

칼럼출처 : 김풍진 변호사 < pjkimb@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