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하이코리언뉴스] = 뉴욕시에 와서 “별들의 밤하늘 (The Starry Night)” 을 안보고 지나갈수는 없다. 이원본은 뮤지엄 어브 모던 아트 (Museum of Modern Arts)에 안치되어 있는데, 이 박물관은 이름대로 전시품 대부분이 현대 예술작품이다. 나는 오로지 “별들의 밤하늘”을 보러갔다.
검푸른 밤하늘에 둥근달과, 크고 작은 별들과, 가로 지르는 은하수가 뱅뱅도는 붓의 획으로 그려져있다. 한쪽으로는 검은 싸이프러스 나무가 역시 뱅뱅도는 획으로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러한 예술작품에 가격을 붙이기는 어렵지만, 쉽게 일억불은 간다고 한다. 이 그림은 빈쎈트 밴 고흐 (Vincent Van Gogh) 의 작품이다.
빈센트트 반 고흐는 네델랜드에서 1853년에 태어나서 37세에 자살로 생을 마쳤다. 그는 27세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 죽을때까지 약 10년 동안 2,000 여점의 화폭및 스케치를 남겼다. 지금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이 유명 박물관에 안치 되어있고 소수는 사사로운 수집으로 보관되어있다. 어떻게 고흐의 그림이 그렇게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고, 그의 원본 한점을 보고자 지구를 돌아 다니는 무리들이 있는가 하면, 그의 일생을 연구하는데에 자신의 일생을 바치는 “고흐 학자” 들도 있다.
반 고흐는 후기 인상파로, 쎄잔느, 고겡, 마띠쓰, 피카소, 등등하고 화술이 같은 부류이다. 인상파인, 마네, 모네, 드가, 르놔르 등의 화가들 보다 한걸음 현대화로 나간 화가들이다. 인상파의 작품이 처음 전시회에 등장했을때, 일반인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저게 그림이야?” 하면서 등을 돌렸다.
얼마후에 관중들은 인상파 그림을 찾아대며 그림이 나오는대로 고가로 사 들였다. 후기 인상파들도 처음 등장했을떄 똑같은 과정을 겪었는데, 고흐는 유난히도 인정을 못받았다. 그는 살아 생전에 단 한점도 팔지를 못한채 실망과, 절망과, 가난속에서 불행한 세월을 보냈다. 심지어는 정신병자 취급을 받고 요양소에 갇히기도 했다.
그의 유명한 얘기거리로, 자신의 귀를 면도칼로 자른 사건이다. 그건 어느 친구가 고흐의 자화상을 보고, “다 좋은데 당신의 귀가 잘못 그려지었다” 고 하자, 고흐는 화를 벌컥내고 어디가 잘못 되었냐고 자신의 귀를 잘라서 화폭에 대보였다는 얘기이다. 헌데, 고흐 학자들은 이 해설이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어쨌든, 고흐는 감정이 폭발적인 예술가이었다. 그의 그림이 말해 주듯이, 격렬한 감정이 뱅뱅돌리는 붓끝에 보인다고 한다. 열정에 불타는듯한 그 독특한 화술이 관람객들을 사로잡는다. 현대판 엄마들이 미술공부하는 아이들을 보고, “붓을 돌려라! 돌려!” 한다고 해서 한참 웃었다. 그 화법이 고흐의 독특한 스타일로, 그의 끓어오르는 감정의 표현이다.
고흐에게는 남동생(Theo)이 하나 있었다. 그의 중요성은, 스쳐가기에는 너무나 거대했다. 고흐가 미술가로서 그의 온갖 재능과 열정과 시간을 그림 그리는데 바치었고, 그 그림을 일생에 단한점도 못팔았으니 경제적 곤란과 뒤따르는 정신적 절망속에서 그나마 버티어 갔던것은 동생의 도움이었다.
동생은 화구점을 운영했고, 형인 고흐에게 화구자료를 제공했을뿐 아니라 생활비도 대 주었다. 그리고 형의 그림을 자신의 화구점에 전시했건만, 동생이 쓴 편지에는, “형, 오늘도 한점도 못팔았어, 아무도 들여다 보지않아.” 형은 실망에 깊히 빠졌었다. 동생의 위로 없이는 고흐라는 화가는 없었을것이다.
고흐의 작품주제는 대부분이 자연이었다. 노란 해바라기, 파란 난초, 사과나무 과수원, 얼리브나무, 싸이프러스 나무, 밤하늘, 자화상, 등등 이었다. 대조적인것이, 모네, 마네, 드가, 르놔르 등, 그당시 쟁쟁했던 대가들은 어여쁜 여자들을 담은 화폭을 많이 내 놓았다. 고흐는 모델료를 줄돈이 없어서 예쁜 인물이 있는 화폭이 하나도 없다.
고흐도 한참 젊은나이애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상대방 여자집에서 이사실을 알고는 숨도 안쉬고 여자를 감추어 놓았다. 어느 부모가 딸에게 가난뱅이 무명인 화가와의 교제를 허락할가. 고흐는 더 더욱이 실망에 빠지어 커피와 담배만으로 살면서 건강까지 해쳤다. 그는 끝내 미혼이었고 후손은 없다.
그가 죽자, 그의 기둥역활을 했던 동생도 6개월후에 죽었다. 고흐의 작품은 동생의 부인이 간직했다가, 어느날 전시를 했고, 한두사람이 사갔다. 뮤지엄에서도 한두점씩 구입요청이 들어오더니, 드디어 인기가 폭파했다. 고흐의 그림은 그후 즉시 다 팔리었고, 재구입 가격은 날로 상승했다. 이제는 그의 원작품은 대부분이 백만불 단위이고, 모조품도 잘 팔리고 있다. 나도 모조품 하나 집안에 걸어놓고, 불행했던 천재 고흐를 생각하며, 서글픈 마음으로 감상하고 있다.
칼럼출처 : 김풍진 변호사 < pjkimb@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