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 하이코리언뉴스] = 삼일절은 아무리 둘러 보아도 인류 역사상 길이 남을 위대하고 찬란한 거사다. 우리 조상들은 1919년 3월 1일에 범 국민들의 독립운동을 거행했다. 일본에게 나라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온 국민이 분노와 절망과 굴욕속에서 살아온지 9년 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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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 정오 12시에, 우리 조상들은 8도 강산 방방 곡곡에서 동시에 “대한민국 만세!” 를 우렁차게 외치면서 거리를 행진했다. 당시 일본 순사들의 잔인함과 악독함은 최악이었으나, 우리 조상들은 감추어 두었던 태극기를 손에 손에 쥐고 길가로 뛰어나왔다.
삼엄했던 일제 감시하에, 쌜폰은 커녕 유선전화도 없이 어떻게 연락을 전국으로 하여 거사를 계획했나? 거사는 빈틈없이 진행되어 일본 관계자들도 놀라 당황하였다. 그날 3월 1일 아침부터 구름같히 모여드는 군중을 일본 순사들은, 이틀 후에 있을 고종황제의 장례식 군중으로 간주하고 내버려 두었다. 그러지 않아도 고종 황제를 1월 21일에 극비하에 독살하고는 군중들의 반응을 되도록 자극하지 않으려고 방관하려는 참이었다.
헌데, 12시 정오에 삼천리 강산 곳곳에서 일제히 “대한민국 만세!” 의 힘찬 부르짖음이 하늘을 찌르고 나오니, 그들은 순간적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했다. 총을 쏴서 몇명을 죽이면서 피바다를 만들기도 했으나, 우리 조상들은 굴하지 않고, 꺾이지 않고, 발밑에 가로 누어 죽어가는 친구의 시체를 가슴 아프게 넘어가면서, 행진을 계속하였다.
그날 피해자의 통계는 정확성이 어려운 가운데에 나온것이, 사망자가 7,500 명, 부상자가 16,000명, 체포된자가 47,000 명이다. 총에 맞아 죽는게 제일 행운이라고 할정도로, 불에 태워죽이고, 방맹이로 두들겨 패서 죽이고, 쇠갈구리나 꼬쟁이로 고문하다 죽이는등 잔인하게 우리조상들은 죽음을 당했다.
그렇게 비참한 인명 피해결과는 그래도 헛되지 않았다. 전세게에 우리의 억울한 입장을 선포하었고, 미국과 중국이 주요 신문을 통해 이 사건을 보도하였다. 그당시 대한민국은 너무 알려지지 않은 나라이어서, 신문 보도가 외국 일반인들에게 잘 주입되지 않았고 세계 국사적인 차원에서 별다른 조처가 없었지만, 역사상 기록이 남았다는 점으로 만족한다.
살아남은 애국자들이 중국으로 피신하여, 4 월에 “대한민국” 이라는 국호로 임시정부를 상해에 세웠고, 꾸준한 항일투쟁을 만주 벌판에 특히 전개해 왔다. 임시정부를 역경에서 이끌어온 백범 김구 선생님은, 지혜, 전략, 용기, 애국심이 비범하였다. 혈안이 된 일본이 그의 목에 걸은 거액의 포상금과, 물샐틈 없는 일본 수사망을 번번히 빠지어 나오면서 임시 정부를 1945년의 해방까지 이끌어 왔다.
이세상에 애국자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나? 나라를 사랑한다 함은 즉 자신을 사랑하는것이므로 자기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나. 자기 사랑에 너무 빠지어서 문제는 생기어도,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사실 없다. 조국이 나 자신이고, 나 자신이 조국이고 보면, 조국은 나의 분신이자 나 자신의 연장이다. 당연히 사랑하게 되어 있다.
우리는 모두 애국자이고, 조국을 깊히 사랑한다. 허나 조국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서슴치 않고 내놓는 애국자는 과연 몇이나 될까? 진정한 애국자가 있나하면 대충 애국을 하거나, 국가를 위한 기본의무를 피하면서 자칭 애국자라는 사람도 있다. 생각이 짧은 사람믈이다.
이준, 이봉창, 안중근, 윤봉길, 유관순, 김좌진, 등등 열사및 의사들의 얘기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채 기록에 희미하게 남은 의병과 열사들도 상당한 숫자이다. 더 나아가서, 희미하게라도 기록에 없는 수많은 애국 희생자로, 어린 학생들, 청년 의병들, 부녀자 독립 운동가들, 심지어는 제주도의 해녀 항일운동가 등등이 일본 순사들에게 무참히 고문당하면서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다가 비참하게 죽었다. 이름도 제대로 못남긴 진정한 애국자들을 우리가 다 알지 못함이 안타깝다.
이러한 애국자들의 후세인 우리들은 조상들 뵙기 부끄럽지 않게, 뒤늦게 라도 튼튼한 독립국가를 세웠고, 현재로 세계의 약 200 국가들 틈에서 부강국가로 당당히 앞줄에 서있다.
우리는 삼일절을 하루의 행사만으로 그칠게 아니고, 적어도 삼월 한달은 두고두고 우리 선조들이 흘린피와 고통을 기억하고 머리를 숙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