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 하이코리언뉴스] = 프랑스의 남쪽 작은 도시, 엑상 프로방스 (Aix En Provence) 에서 볼일 보던중 잠간 빈 시간이 있어서, 나는 세잔느 (Paul Cezanne)의 화실을 방문했다. 세잔느가 말년에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과일등의 정물화를 그렸던 별장으로 엑상 프로방스 외곽에 자리잡고 있다.
아담한 건물로 이층에 있는 화실이라고 보여주는데, 화가작업복, 화병, 포도주병, 주전자, 바구니 등이 전부이다. 그방에 있는 먼지를 보고도, “와아!’ 하는 방문객이 있을 거지만, 나는 그정도의 전문인은 아니므로 그러지는 못했다. 그냥 세기의 천재 화가가 한때 숨쉬면서 예술 작품에 열중했던 곳이라는 사실만으로 감격하면서 얼쩡거리다가 나왔다. “와아…!” 할건 하나도 없었다.
세잔느는 1839년 엑상 프로방스에서 부호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이 정해준 변호사 경력을 거부하여 그의 노여움을 받았으나, 모친의 후원으로, 본인이 원했던 화가의 인생을 선택할수 있었다. 동시대 대부분의 예술인과는 달리 생활고에 시달리지 않고 작품에 열중할수 있어서 인지, 그는 자신의 취미이자 열정인 화폭에 열중할수 있었다. 그당시 예술계를 군림했던 인상파 화가들, 모네 (Monet), 마네 (Manet), 드가 (Degas), 르놔르(Renoir) 등등의 작품과 현저하게 다른 화술을 보임으로, 그는 인상파가 아닌 인상파 차단계를 구성하면서 현대 화가의 앞장을 섰다.
그는 파리와 엑상을 왕래하면서 에밀 졸라 (Emil Zola) 등, 당시 최고의 지성인들과의 교류를 즐기었지만, 천재 예술인이 많이 그렇듯이 성격이 급하고, 불안정하고, 고집이 세고, 무례도 범하는 태도를 보이어서 순탄한 사회생활은 못했다. 그 당시 사회는 그의 천재성을 몰라보고 그의 작품을 완전히 무시했다. 그럴수록 그의 성품은 사나워지기 까지 하였다.
혁신적이고 새로운 맛이 현저했던 세잔느의 그림들은 그림전람회가 있을때 마다 열등한 그림으로 평가받고 참가를 번번히 거절 당했다. 당시 인정을 받았던 아련하고 섬세하고 꿈속같은 인상파의 작품과는 달리, 그의 화폭은 붓질이 굵고 힘이 들어가있고, 검은색을 주저없이 썻고, 밝은 색상은 선명하고 뚜렷했고, 살아있는 감정이 넘치는 새로운 화술로 현대 미술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의 그림은 누구든지 금방 분별할수있게 눈에 띄인다.
그의 화법은 피카소 (Picasso), 마티스 (Matisse) 등의 뛰어나는20 세기 대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결혼도 오랜 동거여인과 드디어 47 세라는 나이에 했는데, 순조롭지 않았던 사이로 알려져있다. 더구나, 세잔느가 67 세로 1906년에 사망하고 난후에, 그 부인이 세잔느의 소지품이나 기념품을 많이 불태워 버리었다. 아들도 하나 있었는데 아버지의 천재성을 몰라보고, 어머니가 하는데에 동조했다고 한다. 동네사람들이, “이건 아닌데…” 하고 뒤늦게나마 손을 써서 몇가지래도 구해 보존해 놓았다. 그의 인생 마지막 10년 정도쯤에는, 예술계에서 조금씩 그의 그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은 모두 900 점 정도인데, 차츰 박물관 관장들이 사들이기 시작했고, 구입자의 숫자는 늘어가고 있었다. 결국 세잔느는 죽기전에 자신의 작품이 인정을 받기 시작하는걸 알았다니, 나도 안도의 한숨을 지으며 가슴이 훈훈해 진다.
최근에 세잔느의 “사과” 정물화는 $100 million (1 억불인가? 계산하는데 한참걸린다) 에 누구가 사들이었고, “카드 게임” 은 석유 부자 카타르의 황실에서 $250 million (2억5천만불) 에 샀다. 그의 생전에, 그림 전시회에서 수준이하라고 여러번 낙격처리 당한 그림들이다.
세계에서 제일 잘 알려진 “모나 리자” 가 8억불이라고 하고, 현재로 제일 값나가는 화폭은 반 고흐 (Van Gogh) 의 “별들의 밤” (Starry Night) 으로 10 억불이라고 한다. 고흐 생전에 1 불애도 안팔렸던 그림들이 이제는 억불을 부른다.
천재의 가치를 알아보는데는 시간이 걸리고, 그 가치는 날이 갈수록 불어난다. 진정한 천재의 작품에 어떤 값을 부칠수가 있을까?
칼럼출처 : 김풍진 변호사 < pjkimb@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