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줄을 놓으십시오.
서울대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대는 지금 어느 마른 우물안에서 외줄을 잡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여기서 탈출하자면 줄을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도저히 그럴 힘이 없다. 올라가기는커녕 이대로 버틸 힘도 바닥난 상태다.아래는 어두워서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이 줄을 놓치면 저 깊은 바닥 아래로 떨어져 온 몸이 산산이 부서질 것 같다. 힘은 점점 빠져오는데 여기서 탈출할 방법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김난도, 아청 96p)
이 글은 생존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적성과는 상관없이 그저 사회적인 기류를 따라 미래도 보장되지 않는 일에 매달려 전전긍긍하면서 세월만 허비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이젠 그 줄을 놓으라고 던지는 메시지의 일부입니다.
어쩌면 이 글은 오늘날 이 시대에 존재하는 교회들이 들어야 하는 메시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동안 우리의 신앙은 결코 오를 수 없는 어떤 목표치를 정해놓고 오를 수 있다는 동기부여와 신념을 불어넣은 사람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그 길이 어떤 길인지도 모른체 "저 사람이 저렇게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의 소위 카피(Copy)신앙인의 모습은 아니었습니까? 혹 주변에 믿음 좋아 보이는 사람들의 신앙의 모습을 카피해보려고 "그들이 오르려는 목표에 나도 오르고 말리라"고 이를 악물고 열심히 교회를 다니고 있지는 않습니까?
신앙은 인격이며, 성품의 열매이지 어떤 목표치에 도달하는 지향적인 행동이 아닙니다. 신앙은 지향적 행동이 닮아 감을 앞질러서는 올바른 신앙으로 자리 잡을 수 없습니다. 닮아감이 지향적 행동보다 앞서야 합니다. 닮음에서 지향이 나올 때 분명한 목표가 만들어집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도록 부르셨기 때문이지 하나님같이 일하도록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진정한 행동을 만들어 주는 기반이 될 때 신앙은 올바른 길로 향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향적 신앙이 닮음의 신앙보다 앞서면 그것은 마치 썩은 동아줄을 붙잡고 있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 줄을 놓지 못하고 떨어 질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가 붙잡은 줄을 놓으면 모든 것이 끝날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신앙이 되고 믿음이 되었습니다. 그 줄을 끝까지 놓지 못합니다.
어쩌면 교회는 과거 2000년동안 신앙과 세상사이에서 줄다리기를 벌이는 사람들처럼 양팀의 팽팽한 긴장감 가운데서 살아 나온 모습 같습니다. 그러는 사이 아주 조금씩 '초기 기독교 시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대'에 세상이란 다른 줄이 신앙의 편으로 서서히 유입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혐오하고, "세상은 다 죄다" 라고 종교재판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세상은 교회의 매력이 되었고, 동경의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급해진 교회가 교회의 세속화를 막아보기 위해 복음 아닌 다른 유전들과 전통들을 만들었습니다. 사실 그 목적은 통제와, 성도들의 이탈을 막고, 세상과 교회를 완전히 분리시켜 버리고 봉쇄해 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기독교는 조금씩 그 길을 달리하고, 의견과 견해가 다른 사람들을 배격하고, 심지어는 처형하며, 배교자, 반역자의 누명을 씌우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전통과 유전들이 버젓이 진리위에 서서 교회를 지탱하고, 교회의 유지 수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교회를 자유케 한다는 명목으로 만든 유전들이 교회로부터 진리의 자유를 빼앗아 가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안에는 진정한 영, 혼, 육의 자유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성경말씀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버렸고, 편리에 따라 여기저기에서 끌어다 자신들의 주장을 마치 성공적인 것처럼 오도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강대상에서 전해지는 말씀들이 진리인지, 거짓인지 구별조차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의 줄, 영생의 줄을 교회에 주셨음에도 교회가 세상에 내려준 줄은 낡고 썩은 줄뿐입니다. 나만 살면 다른 사람은 죽어도 상관없다는 식의 발상이 교회안에 버젓이 뿌리내려 있습니다. 세상사람도 그 줄이 썩었는지, 튼튼한지 구별할 줄 압니다. 그런 줄을 누가 붙잡겠습니까?
고 옥한흠 목사님이 생전에 목회자 여름 하계 수련회에 모인 목회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현재 한국 교회 강단에서 울려 퍼지는 설교의 80-90퍼센트가 복음과는 무관하고 고난과 십자가는 찾아 볼 수 없는 쓰레기 설교들입니다. 대부분 성공, 잘 사는 방법, 긍정을 믿는 거짓된 믿음, 복, 자기자랑, 자기 과시.... 이런 설교들이 울려 퍼지는 한 한국교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것들은 다 쓰레기들이기 때문입니다. 맛있고 찰진 밥을 지어 먹여도 시원치 않는 때에 성도들에게 쓰레기를 먹인다고 생각을 해보십시오. 가슴을 치고 회개해야 할 일입니다."
강단이 부패하고, 진리에 표류하고 있습니다. 더 편승해 교인들은 그 쓰레기 같은 설교를 들으면서 은혜 받았다고 말하는데 이는 목회자의 타락과 안일함을 부추기는 것입니다. 설교는 목회자들만의 특권이 아니라 공유해야할 진리입니다. 성도들은 깨어있고,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목회자들이 정신차리고, 말씀앞에 바로 서게 됩니다. 설교 못하는 목회자 탓하지 말고, 정말 통한의 마음으로 기도해주고, 진솔한 마음으로 충언해 줘야 합니다. 그 충언이 그 한 목회자를 구원할지 어찌 알겠습니까?
지금까지 잡고 있던 줄이 생명줄이 아니라면 더 늦기 전에 빨리 그 줄을 놓고 진리의 줄, 영생의 줄로 옮기십시오. 당신이 영원히 주님의 품안에서 살 수 있는 생명의 길은 오직 예수의 줄 뿐입니다.
올랜도 선한목자교회 최래원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