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하이코리언뉴스] 장마리아 기자 = AP 통신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 미국 해군이 호르무즈 해협을 드나드는 선박을 차단하는 봉쇄 조치에 즉시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파키스탄에서 열린 미·이란 간 휴전 협상이 최종 합의 없이 끝난 직후 나온 발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21시간 동안 이어진 회담이 종료된 뒤 처음으로 입장을 내고, 전쟁 이전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지나던 호르무즈 해협에 대해 미국이 주도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를 통해 이란이 해협을 지렛대로 삼는 상황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쳤다.
미국의 봉쇄 조치가 현실화할 경우 국제 에너지 시장은 더욱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유가와 천연가스, 관련 원자재 가격에도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다만 실제 봉쇄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모든 선박이 다 함께 통과하든지, 아니면 아무도 통과하지 못하든지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란에 통행료를 지불한 모든 선박을 공해상에서 수색·차단하라고 해군에 지시했다”며 “불법 통행료를 낸 선박은 공해상에서 안전한 항해를 보장받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미국 외에도 다른 나라들이 이번 봉쇄에 참여할 것이라고 했지만, 구체적인 국가는 언급하지 않았다.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미군은 기뢰 제거 작업에 앞서 구축함 2척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쟁 발발 이후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란 국영매체는 자국 합동군사령부가 이를 부인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이 결렬된 핵심 배경으로 이란의 핵 개발 문제를 지목했다. 그는 미국이 “적절한 시점”에 이란을 “마무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며 강경한 태도를 이어갔다. 또 민간 인프라 타격 가능성을 다시 언급했고, 휴전 발표 직전 자신이 했던 “오늘 밤 하나의 문명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발언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휴전 종료 이후 향방은 여전히 불투명
이날 종료된 대면 회담은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이후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열린 최고위급 협상으로 평가된다. 양측 대표단은 회담 종료 후 모두 이슬라마바드를 떠났다.
다만 오는 4월 22일 14일간의 휴전이 종료된 이후 어떤 조치가 이어질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파키스탄 중재진은 휴전이 유지돼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양측은 서로 책임을 돌리며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미국 대표단을 이끈 JD 밴스 부통령은 회담 직후 “이란이 핵무기를 추구하지 않겠다는 점과, 단기간에 핵무기를 확보할 수 있는 수단도 포기하겠다는 명확한 약속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맞서 이란 측 대표인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국회의장은 “이제 미국이 과연 우리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지 스스로 결정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앞서 이란 당국은 협상이 두세 가지 핵심 쟁점에서 난항을 겪었으며, 미국의 과도한 요구가 문제였다고 주장한 바 있다.
파키스탄의 이샤크 다르 외무장관은 앞으로 며칠 안에 새로운 대화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란도 대화를 이어갈 의사가 있다고 국영 IRNA 통신은 보도했다.
유럽연합(EU)은 추가적인 외교 노력을 촉구했고, 호르무즈 해협 남쪽에 위치한 오만의 외무장관도 “각 당사자가 고통스러운 양보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크렘린궁 역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란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외교적 해법을 돕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최대 쟁점은 이란 핵 프로그램
이란 핵 프로그램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지난 2월 28일 전쟁에 돌입하기 전부터 양측 갈등의 핵심 쟁점이었다. 이번 전쟁으로 지금까지 이란에서 최소 3,000명, 레바논에서 2,020명, 이스라엘에서 23명, 걸프 지역 아랍 국가들에서 10여 명 이상이 숨졌으며, 중동 여러 국가의 기반시설도 큰 피해를 입었다.
이란은 오랫동안 핵무기 개발 의도를 부인하며, 자국에는 평화적 목적의 민간 핵 프로그램을 운영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해 왔다. 2015년 핵합의 역시 1년이 넘는 협상 끝에 도출된 바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란이 보유한 농축우라늄이 아직 무기급 수준은 아니더라도, 기술적으로는 핵무기 개발과 매우 가까운 단계에 있다고 보고 있다.
민감성을 이유로 익명을 요구한 한 이란 외교 당국자는 협상이 핵무기 문제 때문에 결렬됐다는 해석을 부인했다. 그는 “이란은 핵무기를 추구하지 않는다”면서도 “평화적 목적의 핵에너지를 사용할 권리는 분명히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 내부에서는 최근 경제 문제로 시작된 대규모 시위와 정치적 불만, 여기에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까지 겹치면서 피로감과 분노가 커지고 있다.
테헤란에 거주하는 60세 시민 모하마드 바게르 카라미는 “우리는 전쟁을 원한 적이 없다”며 “하지만 전장에서 얻지 못한 것을 협상장에서 가져가려 한다면 그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레바논 전선도 새 변수로 부상
이란이 이번 회담에서 제시한 10개항 제안에는 전쟁의 확실한 종식과 함께, 이란의 ‘지역 동맹들’을 겨냥한 군사행동 중단 요구도 포함됐다. 특히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멈춰야 한다는 점을 명시했다.
이스라엘은 이번 휴전 합의가 레바논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이란과 파키스탄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스라엘이 예고 없이 협상 참여를 승인하면서, 이스라엘과 레바논 간 협상이 15일 워싱턴에서 시작될 예정이다. 양국은 공식 외교관계가 없다.
이란 휴전 합의가 발표된 날, 이스라엘은 베이루트에 대규모 공습을 가해 300명 이상이 숨졌다. 이는 전쟁 발발 이후 레바논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온 하루였다고 레바논 보건부는 밝혔다.
이후 베이루트 공습은 다소 잦아들었지만, 레바논 남부에 대한 공격은 오히려 강화됐다. 이는 전쟁 초반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을 발사한 이후 재개된 이스라엘의 지상전과 맞물려 이어지고 있다.
레바논 국영 NNA 통신은 이날 해안 도시 티레 인근 마을 마아루브에서 발생한 공습으로 6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은 레바논 정부가 헤즈볼라 무장 해제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헤즈볼라는 수십 년에 걸친 견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당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