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의 칼럼 "구도자(求道者)의 생활"

Submitted byeditor on토, 04/30/2016 - 13:18

안심입명(安心立命)이란 말이있다. 뜻을 해석한다면 불교에서 구도자들이 정도(正道)를 구하기위하여 믿음으로 마음의 평화를얻어,하찮은 일에 마음이 흔들리지않는 경지를 이르는말이다. 구도자라는 말은 흔히 종교계, 불교나 도교에서 많이 쓰는말인데 이것은 꼭 불교나 도교에 국한된것은 아니라고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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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는 가족이있고 이웃에는 이웃사람과 사회에는 지인과 친구,직장에는 동료,상사,하급자가있으며, 주위의 환경과 세상속에는 자연과더불어 온갖 초목과 동물들이 함께 존재하고있다. 이렇듯 세상속에 나는 나혼자 존재하는것이 아니라 주위에 여러사람,동,식물및 우주와 자연의 관계속에 존재하고있다. 이러한 관계속에 어우러져 살다보면 좋은일만 있는것이 아니라 나쁜일들도 많이있게 마련이다. 구도란 이러한 관계속에서 어떻게하면 나쁜일은 없고 좋은일만 있게할수있을까를 찾아가는 길이라고 볼수있다.

세상을 살다보면 남이 나를 괴롭게하는 경우가있어 괴로울때도 있고 또 내가 부족하여 남을 괴롭게하는 경우도있다. 그러므로 내가먼저 남들과 다투지않고 인간관계를 유지할수있는 그릇이 되기위한 인간되는 길을 찾는것을 개인적구도라고 볼 수있으며, 나혼자서만 잘한다고해서 인간관계가 잘 항상 좋은일만 있을수는 없다. 그러므로 서로 통하는 상생의 길을 찾아가는것을 넓은의미의 구도자라고 할수있다. 예수님,석가님,공자님등은 서로 더불어 살수있는 법을 말씀하셨다. 복을받기위해 교회나 절에 다니는것도 좋지만, 참다운 인간이되기위한 목적으로 신앙심을 갖는것도 좋으리란 생각이든다.

요즘들어서 구도자(求道者,Seeker)라는 말이 사람들이나 교인들사이에 자주 사용되고 있는것을 목격했다. 전에 우리나라에서는 원입교인(願入敎人)이라고 사용해왔지만 이제는 이말도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편이다. 구도자라고 하는말은 그리스도교에서는 교회적,신학적 용어이다. 이용어는 본래 청교도들이 즐겨 사용했던 말이다. 그가운데서도 조나단 에드워드에 의해서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던 말이기도하다. 이렇게 사용되었던 (구도자)라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죄의 질책을받아 죄를 깨닫고 괴로워하면서 그 죄를 용서받기위해 그리스도를 찾아가는 영혼)을 말한다.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말씀과 성령을통해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진리를 배우고있는 사람을 말한다.

양들을 구원하고 올바른 신앙의길로 인도해주는 목회자역시 목회 경영자가 아니라 구도자라고 하고싶다.구도자의 길은 험하고 힘든 길이라고들 한다. 남을 헐뜯지않고 노여움과 인색함에서 풀려난사람, 비위에 맞거나 맞지않거나 그런것을 전혀 개의치않는사람, 좋다 싫다를 모두 버리고 그어디에도 집착하거나 편협을두지않는 사람, 세상의 모든 물욕과 색욕,명예욕에서 탈피한사람, 말과 행동과 그 생각하는 모든것이 일치하며 어느누구에게도 거슬리지않는 사람, 사람들이 나를 존경한다고 우쭐대지않고,비난을받아도 그것을 마음에 품지않는사람, 자신의 분수를 잘아는사람,등등 자신을 절제하여 편안하고 굳건한마음을 갖추고 자신의 야망과 분노와 미움을 잘 다스려간다면 그는 이세상에서 올바른 구도자의 길을 가고있다고 볼수있겠다.

우리가 알고있는 구도자들중에는 훌륭하고 존경할만한 구도자들이 참으로 많이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사람, 몇사람의 예를든다면 몇년전에 세상을떠난 불교계의 정신적 지주라할수있는 법정스님이다. 그분의 저서중에 (무소유)라는 제목이 눈에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않는다는것이 아니라 필요한것을 갖지않는다는 뜻이다.우리가 선택한 맑은가난은 부(富)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 한것이다) 무소유라고 하는 그분의 인생철학과 그러한 자신의 믿음에따라 그렇게 살아왔던인생의 발자취, 특히 다비식으로 치룬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 그분은 완전한 구도자로서의 삶이었다. 또한 종교계의 큰 별이라고 할수있는 한경직목사님역시 위대한 구도자의 길을 걷고가신분이라고 할수있다.

내 자신이 평소 위대하고 존경하는 목사님중의 한분이신 그 목사님은 정말로 모든 목회자들이 본받고 따라야할 훌륭하신 하나님의 업적을 이뤄낸 참된 주님의 종이다. 한국의 성자(聖者)라고 불리우는 그분의 삶 역시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였으며,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상을 수상하신분이다. 그분이 하신말씀중에 (기독교가 아니라고해서 멸시하거나 충돌하는 일은 있을수없읍니다. 그들의 종교를존중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들을 사랑해야합니다.목회자는 돈과여자와 검약에 모범을 보여야합니다. 그리고 예수의 삶을 따라 사는 목사라면 가난해야합니다. 교인들이 내는 헌금을 자기돈처럼 사유화하고, 교회의 세확장과 교회건물크기로 자기과시나 교만에 빠져서는 안됩니다.천막교회에서 더 믿음이 살아나고, 하나님보시기에 합당한 성직생활을하는것이 올바른 종의 본분입니다.일부 큰교회 목사들의 호화스런 생활은 잘못된것이며, 자기교회의 교인이많다고,헌금이 많이걷힌다고, 자기가 설교를 잘한다고,교인위에 군림하는 목사는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는 잘못된 목사입니다. 목사는 그야말로 교인들의 더러운발을 업드려 씻어줄수있는 겸손하고 궁휼히여기는 마음적인 자세가 갖추어진 참다운 종이어야합니다) 라는 말씀은 모든교회의 목회자들이나 목사들이 귀담아들어야할 좋은 말씀이다.

그외 많은 목사님들이 올바른 구도자의길을 묵묵히 가고있는데 그중에 (밥 퍼주는 목사님)으로 유명한 최일도목사님도 힘들은 구도자의 길을 가고있는분중의 한분이시다.구도자들은 세상의 모든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야한다고 한다. 자유는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될 필수조건이라는 의미에서 우리가 매일 먹어야 하는 밥만큼이나 소중하다.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카라마조프 형제)에서 (우리를 마음대로 일을시켜도 좋소.그러나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오)라고 호소한적이 있지않은가?........철학적 정치적 부자유를 논외로 하더라도 모든인간은 크게 세가지에 얽매어있다.

첫째는 세상으로부터 자유롭지못하다.인간은 세상속에살면서 세상에 매몰되어 시류에따라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둘째는 모든인간은 법,혹은 율법의 멍애에서 자유롭지못하다. 법이있는한 불법과 형벌로부터 자유로울수없다. 마지막으로 육체로부터의 자유도없다. 아무도 육신의 정욕과 질병,그리고 죽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굴레로부터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벗어나려고 시도하다가 종종 더깊은 함정에 빠지기도한다. 그중에 하나가 세상을 정처없이 떠돌아 다녀보거나 결혼에 매이는것이 싫어서 동거만하거나 연애조차 안한다거나 세상과 육체의쾌락을 멀리하려고도 해본다. 어떤이는 자유를찾아 엄동설한에 거적떼기 하나만 걸치고 움막에서 금욕적으로 살아가기도한다. 이처럼 수도사적 고행을하면 자유를 찾으리라고 생각하는이도 있다. 그러나 참된자유는 진리에서 오는것이며 거져 주어지는 선물이지 수행이나 투쟁이나 노력의댓가가 아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에 있는대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는 말씀이 특별한의미를 가지는것이다. 
일상,아무것도 아닌것같지만 그속에는 구도자 그사람 삶의 정신이 녹아있다. 안빈낙도(安貧樂道), 가난함중에는 평안함과 즐거움을 얻는 가운데 도를 지키며 즐기는것을 말한다. 옛조상들은 이같은 향기로운 삶을 선비의 최고의 덕목으로 꼽았다. 이것이 어찌 선비뿐이겠는가. 구도자의 삶도 마찬가지라고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