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신 최대의선물중 하나가 언어이다. 말을 익히지 못하고 유아기에 엄마의 젖을 먹는 아기들도 그들만의 언어로 엄마에게 의사전달을 하고, 말을 전혀 할 수 없는 농아들도 자기들만의 언어로 의사를 전달하며, 곁에 있는 사람에게도 언어로 의사가 소통되고, 지구 반대편의 멀리 있는 사람에게도 문명의 기기 수단을 통하여 언어로 모든 정보와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다.
이러한 언어(말)로 나의마음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을 받는다. 그리고 이 언어를 통하여 세상사 모든 일에 얽힌 희노애락을 공유한다. 만약에 우리 인간들에게 이렇게 대화를 나눌 언어가 없었다면 우리는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며 답답하게 세상을 살겠는가. 이러한 언어는 오늘날 우리들이 사는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신의 선물이며 세상을 이끌어가는 버팀목이다. 때문에 언어의 역사는 인간역사 흥망성쇠의 열쇠이기도하다.
행복한 가정은 남편과 아내의대화가 부드럽게 잘 통하고, 부모와 자녀간의 언어가 일치하나, 불행한 가정은 언어가 서로 다른 프랑스 사람과 한국 사람의 대화처럼 언어나 의사소통이 안 된다. 그래서 남편과 아내의 언어가 다른 가정, 정부와 국민이 언어가 다른 국가, 목사와 성도간의 언어가 다른 교회는 행복이나 화목, 발전과 부흥이 있을 수 없다. 반대로 조직이 다 같은 말을 하고 다 같은 마음과 다 같은 뜻으로 합심하는 국가와 민족, 가정과 직장, 교회는 잘되고 번창하고 발전한다.
언어(言語), 말, 이렇게 인간들에게 중요한 언어에 대한 정의를 내리자면 사람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데 사용하는 방법으로 언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용하는 언어, 즉 말을 적절한 시기와 올바른 방법으로 사용하고 표현해야 할 의무가 우리들에게 있다. 언어(말)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함부로 해서는 안 되며, 또한 말을 표현해 내는 세치 혀를 잘 놀려서 자기가 표현하거나 얻고자하는 구사력을 잘 갖추어서 말을 해야 한다. 세상에는 말을 잘못하여 불행을 겪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를 너무나 흔하게 볼 수 있다.
옛날에는 임금에게 직언을 올리다 임금의 분노를 사서 목숨을 잃는 경우를 역사를 통하여서 우리는 알고 있다.
역린(逆鱗), 역린은 원래 용(龍)의 턱밑에 거꾸로 솟아난 비늘을 말한다. 용이란 동물은 길을 들이면 타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유순하나 이 역린을 건드리는 사람은 반드시 죽이는 난폭함을 보인다. 임금의 심기도 이와 같다. 말이란 일단 혀를 통하여 입 밖으로 나오면 그것이 자신에게 해가 될 수 있고 이가 될 수 있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말로 인해 이득을 본 경우를 말함이다. 그렇다면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지게 되는 경우도 성립될 수 있다. 말은 항상 상대적인 것으로 상대방에게 오해의 여지를 주어 말하는 사람이 뜻하지 않게 해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별도의 얘기인데, 세치 혀를 놀려 남을 험담하고 비방하며 헐뜯는 사람들을 우리는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남을 헐뜯는 것은 살인보다 더 위험하다. 살인은 한사람만 죽이지만 헐뜯기는 세 사람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헐뜯는 사람 자신과 그 말을 비판 없이 그냥 듣고 있던 사람, 그리고 헐뜯기의 대상이 된 사람이다. 남을 헐뜯는 자가 저지르는 죄는 무기로 사람을 해치는 것보다 더 무섭다. 무기는 근접하지 않으면 상대를 다치게 하지 않지만, 헐뜯기는 아주 먼 곳에서도 사람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내가 다니던 교회의 어느 사람은 있는 말, 없는 말을 다 지어내 거짓말을 더해 남을 씹어대고 헐뜯기를 좋아하는 교인이 있었다. 그는 입만 열었다하면 남을 비방하고 헐뜯기를 일삼다보니 모든 사람들이 그의 말을 곧이듣지 않을뿐더러 교회에서 조차 그를 인간취급을 안 해주며 사람들은 그를 인간쓰레기로 취급하고 있다. 사람이 사람답게 인간취급을 못 받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수치스럽고 짐승 같은 생활인가. 그러면서 교회에 와서는 거룩한 척 위선을 떨고 있다.
세상은 선하고 올바르게 살아가야한다. 세상을 살다보면 아름다운 것이 있으면 추한 것이 있고, 선이 있으면 반드시 악이 있다. 세상은 이렇게 상대성을 띄고 구성되어있다. 즉 선한 사람이 있으면 위와 같이 위선적이며 남을 헐뜯는 악인도 함께 존재하기 마련이다. 우리들은 선을 쉽게 알아보지만 악은 식별하기가 매우 어렵다. 유혹은 달콤하게, 악은 항상 이렇게 사람들에게 귀에 솔깃하게 관심을 끌며 접근해온다. 남을 헐뜯고 비방하는 말에 대개의 사람들은 흥미와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러면 뿌리치기 어려운 손길을 내민다. 사람들이 그 손과 악수를 하고 달콤한 말을 즐기면 그때를 놓치지 않고 악은 선의 탈을 벗고 본색을 드러낸다. 우리는 이러한 악의 유혹에 현혹되지 않아야한다.
세치의 혀가 사람을 행과 불행으로 만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느 장사꾼이 큰소리로 외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인생의 비결을 사실 분은 없습니까?’ 거리의 사람들은 그 인생의 비결을 사기위해 순식간에 그 사람 곁으로 모여들었다. 그 사람들 틈에는 유명한 정치가, 교수, 목사, 선생님도 있었다. ‘여보시오, 그 인생의 비결을 나에게 파시오’사람들은 서로가 사겠다고 조르자,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 인생을 참되게 사는 비결은 자기의 혀를 신중하게 사용하는데 있습니다’ 성경말씀 잠언15장2절을 보면 이렇게 쓰여 있다.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하게 베풀고, 미련한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 세상을 살다보면 세치의 혀를 잘못 놀려서 크게 실패하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인생을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정치계는 물론이고 사회에서나 직장, 일반단체, 교회, 학교 등 모든 분야에서 예외는 없다. 세치의 혀란 약 10Cm정도 길이의 혀라는 의미로서, 짧은 혀로 하는 말이 목숨이 왔다갔다 할 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그만큼 혀는 짧지만(3치라고 표현) 혀로부터 나오는 말의 결과는 엄청나다. 사회생활을 원만하고 성공적으로 하려면 세치의 혀를 잘 놀려야만 한다. 몇 십 년을 우정을 함께한 절친한 죽마고우도 말 한마디에 원수가 되고 죽일 놈이 되어 갈라서는 경우도 다반사다. 길은 갈 탓, 말은 할 탓 이라고 ‘아’ 다르고 ‘어’ 가 다른것처럼 문장과 표현이 다르듯이 말을 세심히 생각하며 가려서 할 필요가 있다.
석가모니(부처)도 모든 재앙은 입에서 나온다. “혀를 지켜라. 맹렬한 불길이 집을 태워버리듯 입을 삼가지 않으면 입이 불길이 되어 온몸을 태우게 될 것이다.” 라고 말했다. 모든 사람들의 불행한 운명은 그 입에서 생기는 것이다. 입은 몸을 치는 도끼요. 몸을 찌르는 칼이다. 라고 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길지 않은 혀를 가지고 덕을 쌓으면 복을 얻고, 세치 혀를 잘못 놀리면 화를 입는다고, 말을 조심하라는 속담들이 많다.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 ‘혀 아래 도끼 들었다.’ 웃자고 한 말에 초상난다. 세치 혀가 사람 잡는다는 등 말과 관련한 속담이 많은 것은 말 한마디가 가져오는 파장이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많은 말의 실수를 한다. 글은 잘못 쓰면 고치면되지만 말이란 것은 자신의 입 밖으로 나감과 동시에 다시는 주어 담을 수가 없다.한마디의 실수로 인하여 여러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랜 시간 오르내리는 것은 정말로 괴로운 일이다. 말이 많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말실수를 하게 된다.그러므로 필요 없는 구설수에 오르지 않으려면 말을 아껴야한다.인체에서 혀는 가장 짧은 장기에 속하지만 가장 위험한 무기로, 갑자기 자신의 실수가 되어 순간적으로 되돌아온다. 혀를 잘 놀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가 하면,혀를 잘못 놀려 힘들게 쌓아올린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기도 한다.이렇게 말을 실수 없이 잘 실천하기란 정말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옛날 중국의 당나라가 망하고 송나라가 들어서기 전인 5대(五代)시절에 무려 다섯 왕조에 여덟 성씨, 열한명의 천자를 잇따라 섬기면서 도탄에 빠진 백성을 건졌던 이름난 재상인 풍도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어지러운 시대를 살면서 누구보다 말의 위력에 대해서 일찍이 잘 이해했다. 그는 혀를 주제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입은 재앙이 들어오는 문이고, 혀는 제 몸을 베는 칼이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어두면 가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리라”. 우리들에게 말조심을 당부하는 글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말을 하지 않고 살수는 없지만, 필요 없이 안 해도 될 말을 하여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원망을 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동포사회 화합과 발전을 위한 김명열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