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풍진 변호사] "머리 숙이는 달, 삼월"

Submitted byeditor on수, 02/28/2024 - 20:46

[SF = 하이코리언뉴스] = 삼월은 “머리 숙이는 달” 이라고 나는 이름을 부쳤다.   1919년 삼일절 운동 하나만으로도 그 이름이 적합하다고 나는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애국자이다,” 라고 하고 그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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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가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은 당연하지만, 단지 위기에 처하면 얼마나 희생을 할거냐가 문제이다.  목숨을 내놓는 사람들로 부터 전재산을 털어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숨어댕기며, 재산은 움켜쥐고, 자칭 “애국자” 라는 사람들도 있다. 모두가 나름대로 조국을 사랑하는 애국자라고 나는 인정해주고 싶다. 

삼월이 오면, 우리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3 . 1 절 행사에만 그치지 말고, 목숨을 내걸었던  조상들을 다시 새겨 봐야한다. 그들의 애국정신은 어마어마 했고, 그런분들이 또 다시 우리 조국위기에 나올가 하는 의문도 품어 본다. 

가장 일찍이 목숨을 걸고 애국심을 터트린 사건은, 1908 년 3월 23일, 쌘프란시스코에서의 총격사건이다. 일본 대사로 파견된 미외교관, 덜햄 스티븐스 (Durham Stevens)가 부둣가에서 귀향할 배를 타려던중, 장인환이 그를 권총으로 쏘아 죽였다. 그 근처에 있었던 전명운이 먼저 총을 쏘았으나 불발탄이었다. 이 외교관은 기자회견에서, 일본을 침이 마르게 칭찬하였고 한국은 열등하고 못난민족으로 당연히 일본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분을 못참고 이 두 애국자는 죽음을 각오하고 그 외교관을 암살하였다. 전세계에서는 이 두 의사의 애절한 애국심에 감동하였고 동정심까지 보여주었다.

이사건에 감명을 받은 안중근 의사는 각오를 다시 굳히면서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에서 일본의 고위직 이또오 히로부미를 총을 쏘아 암살했다. 이는 한국통감이라는 높은 직위로 한국을 지구상에서 완전히 씻어버릴 계획을 세웠던 인물이었다.  안중근 의사는 갖은 고문끝에 다음해 3월에 사형당했고, 그의 나이는 31세 이었다.

1932년 1월 8일 동경에서 아찔했던 사건이 터지었다. 일본의 “천황폐하” 가 동경거리를 지나가면서 궁으로 가는길에 수류탄이 터지었다. 황금마차 두대가 나란히 가는데 수류탄을 맞아 박살이 난 황금마차에는 표적이었던 “천황” 이 타지 않았다. 그가 탔던 마차는 그 뒤를 따르던 중이었다. 이 수류탄을 던진 사람은 바로 우리의 자랑스러운 이봉창 의사이었다.  수류탄을 품고 “천황” 행렬에 접근은 불가능한 일이었으나, 불타는 애국심으로 수류탄을 던지는데 까지는 성공했다. 그또한 갖은 잔악한 고문 끝에 사형당했고, 그의 나이는 31세이었다. 

윤봉길의사는 애국투사역을 결심하고 극비속에서 김구 선생님을 찾아가 조언을 받았다.  그는 중국 홍카우 공원에서 열리는 일본인 행사에 잠입하여 밀입한 수류탄을 투척했다. 일본의 사령관 시라카와 및 주요인물들을 성공리에 살해했고, 그의 용기에 감동한 외국 유명인사들이 그에게 찬사를 보냈다.  그도 혹독한 고문끝에 사형을 당했고, 그의 나이는 24세이었다.   

 1919년 3.1 독립운동 이후 많은 애국자들이 자신의 보금자리를 떠나 만주로, 상해로 이민을 갔다. 그러한 망명 이민자들에게, 그당시 만주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아무 보장이 없는 험악하고 위험하기만 했던 황무지이었다.  그래도 일본통치하 에서는 안 살곘다는 굳은 의지와 독립운동을 전개할 커다란 뜻을 품고, 망명의 길을 택한 애국자들이 많았다.   

이회영열사는 이조시대에 대대손손 높은 벼슬을 지냈던 귀족집안의 인물인데 만주로 대가족을 끌고 이주했다. 그는 한자풀이만을 주제로 삼았던 과거시험을 거부하고, 세계정치, 경제, 과학등의 생동하는 수많은 분야에 걸친 진짜 학문의 중요성을 주장했던 선구자 이기도 하다. 그는 토지, 농지, 가옥등을 다 처분하여 현찰로 만들었고, 수많은 노비들을 해방시켜준 후에, 대가솔을 거느리고 만주로 갔다. 그는 진지한 독립운동을 전개했고, 또 다른 독립운동가들을 물적심적으로 전격도웁다가 드디어 일본경찰에 잡히었다. 그의 연세는 65세로 옥중 고문을 못이기고 옥사했다. 

독립운동의 거장, 김구 선생님은 기인에 가까운 분이었다.  3.1 운동이후 즉시 상해로 가서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고,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벌리었다. 그의 목에는 거금의 상금이 붙어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눈을 벌겋게 뜨고 그를 추적했으나, 번번히 흉칙한 그물을 빠져나왔고, 독립운동을 맹렬하게 총지휘 하였다.  그는 비상한 육감으로 거장 애국자들을 알아 보았고, 안중근, 이봉창, 윤봉길 등 많은 의사들을 지시하고 지도하였다.  

3월 1일은 유관순 언니의 날이다. 유관순 언니는 3.1절 당시 여고생이었다. 건장한 남자들도 못겪는 신체적 고문이외로 어린 여자로 당해야 하는 별다르고 잔인한 고문을 당하고도, 끝내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옥사한 애국자이다.  그의 나이는 18세이었다.    

이외에도 수많은 순국열사들이 잔악한 고문에도 목숨이 다 할떄까지 조국을 위해 독립운동을 하였다.  3월을 맞이하면서, 우리도 어떻게 조국을 도울가를 재삼 생각하며 머리를 숙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