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풍진 변호사] "베토벤과 조성진"

Submitted byeditor on수, 01/31/2024 - 12:10

[SF = 하이코리언뉴스] = 조성진이 이곳 샌프란시스코에 공연을 온다고 하여 부랴부랴 만사 제치고 쫓아갔다. 조성진은 1년에 한번은 이지역에 오는걸 알고 있는데, 올해는 다른일에 몰두 하다가 놓칠번 했다. 특히 이번 연주곡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니 더우기 놓쳐서는 안될일이서, 좌석을 고를 겨를도 없이, 3천석에서 몇 안남은 표를 겨우 사서 갔다.  마침 좋은 좌석이 걸려서 피아노 건반이 훤히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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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의 연주자세로 손이 건반을 치고는 높직히 공중으로 튀는것도 보았고, 앞머리 한줌을 공중으로 던지는 것도 놓치지 않고 보았다. 연주자는 자신만만하게, 또 능숙하게 건반을 쾅쾅 두들겨 가면서 매끈하게 연주해 내었다.

뒷바춤 해주는 오케스트라도, 수십명의 연주자들이 각자의 악기를 열심히 연주하여 화음을 마추어 주었고, 지휘자도 혼혈을 기우리며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우렁차고, 부드럽고, 박력이 있으면서, 감미로운 음향은 집에서 듣는것 보다 과연 월등하였다.           

연주곡인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은 그가 30세쯤에서 작곡한 곡인데, 그떄쯤해서 그는 청각을 잃기 시작했다. 음악가가 청각을 잃다니, 화가가 시각을 잃듯이, 마라톤 선수가 다리를 잃듯이, 청천벽력의 가혹한 시련이었다.  그래도 그는 선률이 마음속에 떠 오른다며, 귀로 못들어도 작곡생활을 계속했다. 

베토벤의 개인 인생은 고통과 절망의 연속이었다. 그는 음악가의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음악가인 아버지가 알코홀 중독자로 성품은 난폭하였고 집안은 가난하였다.  어린 나이에 잠도 제대로 못자게, 오밤중이건 새벽이건 불호령으로 아들을 깨워 피아노 연습을 강요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모찰트 같히 신동어린이로 황제앞에 불려가서 피아노 치기를 원했으나 그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당시 음악연주는 귀족들의 대 저택 응접실에서 주로 하였으니, 베토벤은 여러 귀족들의 생활을 볼수있었다. 그가 사랑했던 여인들은 귀족출신이었고, 신분 차이를 극복못한채  절망에 빠진적이 세번 있고는 일생 결혼을 안했다.    

베토벤은 내부적으로 갈등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인생의 승리의 희열을 그의 작곡에 담았고, 사랑과 기쁨의 아름다움을, 또 실연의 절망도 선율에 담았다. 그의 교향곡 3번은 “영웅”이라고 제목을 부쳤듯이 인생의 승리를 표현했고, 제 5번은 “운명”이란 제목대로 인생의 운명을 힘차게 두들기는걸 표현했다. 제 6번은 인생의 아름다움을 한폭의 전원 그림으로 그려놓았다. 흐르는 샛물소리, 산새들의 우짓는 노래소리, 신록이 우거진 숲속의 화폭을 교향곡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작곡한 제 9번은 파격적으로 합창을 협주곡에 넣으면서 혁명적인 화음으로 인생의 환희를 들려줬다. 

베토벤의 청각능력은 50대 쯤에서 완전히 상실됬다. 이에대한 절망감, 독신으로서의 고독감, 경제적 압박감으로 술에 의존해 살면서 건강을 많이 해쳤다. 그는 절망속에서도 희망에 찬 멜로디를 작곡했지만, 심하게 상한 건강은 회복하지 못하고,  56세로 생을 마치었다.  그는 교향곡 9개, 피아노 협주곡 5개, 바이얼린 협주곡 1 개, 피아노 쏘나타 32 개 등으로 모두 약 170여개의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으뜸가는 작곡가를 대라면, 베토벤이 일등으로 꼽힌다. 바흐나 모찰트를 대는 사람도 많지만, 그들은 클래씨칼 선률에서 대가를 이루었고, 베토벤은 클래씨칼 음악에서 시작하다가 낭만주의라는 새로운 음악의 세계를 열었다. 이에 잇따라, 수많은 낭만주의 작곡가가 쏟아져 나와 음악계에 꽃을 활짝 피웠다. 

낭만주의가 혁명적으로 인기를 끈것은 과거에 억압하고 감추었던 인간의 감정을 처음으로 표출하면서 각 개인의 존엄성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동시대에,자유로운 감정표현이 음악, 화폭, 소설, 시, 철학, 정치, 등등 대거 표출되면서, 인류의 일상셍활에 대혁명이 일어났다. 음악계에선 베토벤이 선구자로, 기쁨, 슬픔, 사랑, 분노, 즐거움, 괴로움, 좌절, 희망, 절망, 승리등, 즉 본질적이고 자연스러운 우리들의 모든 감정을 처음으로 음악에 담아 표현했다. 청중들도 꾹꾹 눌러 놓았던 내부적인 감정이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면서 폭파하는걸 느끼고, 감격하고, 공감했다. 

우리 동양에서도 감정의 표현은 최근 까지도 꾹꾹 눌르면서 살아왔다가, 불과 몇십년전 부터 감정을 풀어 놓았다. 세계정서의 흐름에 따른것인지, 자발적으로 느꼈던 것인지, 동양인들도 기쁘고, 즐겁고, 사랑하고, 환희와 희열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있다.  

조성진도 악보를 정확히 치는 단계를 훨씬 넘어서 감정의 표현 즉 작곡가 베토벤의 풍부했던 감정을 이해하고 해석해 가면서 연주하는것을 보았다. 청중도 그걸 알아보고 연주끝에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낌없이, “Bravo!” 소리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