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풍진 변호사] "부강한 나라가 되어보자"

Submitted byeditor on목, 12/28/2023 - 09:17

[SF = 하이코리언뉴스] = 나의 현 거주지는 머린 카운티 (Marin County) 라고 샌프란시스코에서 금문교를 건느면 나온다. 여기에 동서로 뚤린 동맥길이 써 프랜시스  드레이크 불르바르 (Sir Francis Drake Blvd)라고 하는데, 이길은 가도가도 끝이 없어 보인다.  또 써 프랜시스 드레이크 학교, 써 프랜시스 드레이크 호텔등등 그이름이 드문드문 튀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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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궁금하여 이사람이 누군가를 알아보다가 결국 한숨만 길게 내뿜었다. 그의 신분, 기질, 성품, 안목, 능력, 용기등에 놀랬고, 영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만든 인물중의 하나임에 또 놀랬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과는 너무도 다른 시람이어서 한숨을 낸것이다. 

그는 1540 년, 영국 해변가의 째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학교라고는 발도 못 부치고, 부둣가 선박장에서 소년적부터 막노동으로 컸다. 우리 조상들이 가장 천시했던 소위 “뱃놈” 이었다. 어느 한 배주인이 후손없이 죽자, 그는 드레이크의 잠재성을 알아보고 배를 이 어린이에게 남기었다.  드레이크는 유산받은 선박을 곧 손수 재 정비하고 사공들을 소집하여 망망 대해로 나갔다. 그의 나이는 불과 18세 이었다.  우리나라는 그떄에 아이들을 절대로 물 근처에도 못가게 하였고, 바다는 커녕 또랑 물가래도 근처에만 가면 어른들이 쫓아와서는 나꿔채워 잡아들어 갔었다. 

드레이크는 거친 파도를 헤쳐가면서 바다 한가운데에서 해적생활을 했다. 즉 남미에서 착취한 금은보화를 가득실고 귀향하는 스페인 소속 배를 가로채고, 그렇게 가로챈 한배가득 금은보화를 자신의 고국으로 끌고 가서, 당시의 왕이었던 엘리자베쓰 일세 여왕에게 바치었다. 정세와 정치에 능숙한 여왕은 해적 드레이크를 정부차원에서 후원해 주면서 해양의 무적왕국 스페인의 위상을 꺽기 시작했다. 여왕은 드레이크에게 “knight” 라는 귀족 신분을 내려 주었고, 그후 그의 이름 앞에는 써 (Sir) 라는 존칭이 붙었다.   

써 드레이크는 계속 오대양을 휘집고 댕기면서 지구의 한바퀴를 돌은 탐험가이자, 금은보화를 가득실은 스페인의 함대를 계속 강도질하는 해적이자, 엄청난 부를 영국에 바치는 애국자이자, 수많은 섬을 발견하여 여왕에게 바치는 국토확장의 일등공신 이었다. 그중에, 캘리포니아의 포인트 레이에스 (Point Reyes) 라는곳에 백인으로 처음 정박한 역사적인 일로 그의 이름이 이지역에 난립하고있다.  

영국은 드디어 전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국가가 되었고, 전세계에 영토를 늘려갔다.  미국, 카나다,  오스트랄리아, 카리비안 섬들, 홍콩, 인도, 아프리카 등등의 땅을 영국의 식민지나 속국으로 만들었다. 동시절에 우리나라 조정에서는 당파싸움으로 피비린내를 그치지 않았고, 백성들은 굶주려 있는데 일본이 쳐들어왔다. 우리는 완전 무방비 상태로 갓난아이 같히 그들의 총칼에 그냥 다 쓸어졌고, 그나마래도 자랑할만한 국보와 문화재를 싹스리 뺏기었거나 파손 당했다.  

우리나라는 임진왜란 병자호란같은 무참한 망신과 손해를 보고도, 조금도 변함없이 당파싸움은 계속했고, 국가와 국민은 가난함을 면하지 못했다. 수백년 묵은 가난과 허약함을  극복하자고 마음먹은 지도자가 우리나라 역사상 드디어 나왔는데,  이주인공은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우리도 5천년 역사상 처음으로 전세계로 나아가서, 불과 5, 6십년내에 세계 방방 곳곳에서 당당히 잘 살고 있으며, 이것은 써 드레이크의 활동이후 약 400년 후이다.  

써 프란시스 드레이크는 성품이 사납고, 잔인하고, 오만하고, 고집불통이고, 도둑놈이고, 돈 욕심이 강하고, 비도덕적이었다. 한때는 노예무역도 하여 자신의 부는 물론이려니와 영국의 국고도 엄청 쌓아주었다. 그가 그토록 부를 갖다주어 영국을 부강국으로 부각시키었고, 세계정복의 꿈을 현실화 시킨 신하이니, 엘리자베쓰 1 세 여왕은그를 끔찍히 사랑했다. 우리나라는 그당시에 돈으로 양반지위를 절대로 살수가 없었으며, 신분계층이 완전히 동결되었으니, 돈이 소용없었다.       

누가 옳고 그른가 보다도 우리조상과 영국조상이 얼마나 다르게 생각했나가 놀랠일이다. 그리고 영국은 전세계를 정복했고, 일본이 납작 업드리며 숭상했던 나라가 되었고, 우리나라는 일본이 짓밟는 나라가 되었음에도 놀랬을 뿐이다.

다시 우리 동네로 돌아와서, 써 프란시스 드레이크의 이름을 여기 저기서  삭제 하자는 주장이 최근에 불거지고 있다. 결국 써 드레이크는 해적이자 노예 장사꾼인데, 그 이름을 존경할 가치가 없다는 논란이다. 약 450년 이후에, 비 도덕적이고 비인간적인 행위를 존경할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우리는 옳바르고 부강해질수 있는길을 찾아야 한다.     

칼럼출처 : 김풍진 변호사 < pjkimb@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