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코리언뉴스/편집국] = 6·25 전쟁영웅' 백선엽 예비역대장이 한국시간 10일 밤 11시4분쯤 향년 100살을 일기로 별세했다. 육군 등에 따르면 1920년 평남 강서에서 출생한 백 장군은 일제강점기 만주군 소위로 임관하면서 군문에 들어온 뒤 6·25전쟁때 1사단장, 1군단장, 육군참모총장, 휴전회담 한국 대표, 주중한국대사, 교통부 장관 등을 지냈다.
사진출처 : 6.25 전쟁 영웅인 백선엽 예비역 대장, 중앙일보 권혁재 기자
6·25 전쟁 당시 낙동강 전투와 38선 돌파 작전 등 결정적인 전투를 지휘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1953년 한국군 최초로 33살 이라는 젊은 나이에 대장으로 진급했다.6·25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다부동 전투 때 도망치는 장병들을 모아놓고 내가 앞장서 싸우겠다며 만약 내가 후퇴하면 나를 먼저 쏘라고 말한 뒤 배수의 진을 쳐 후퇴를 막았던 일화가 유명하다.
그는 자신이 겪은 가장 치열했던 전투는 1950년 여름 1사단장으로 낙동강 전선을 사수한 다부동 전투라고 밝힌 바 있다. 두 달 가까이 부하 장병들과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고,전투 현장은 그야말로 생지옥과 같았다고 증언했다.전세가 역전돼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할 때는 나라의 자존심이 걸렸다며 행군을 강행해 미군보다 먼저 평양에 입성해 태극기를 꽂았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평양에 입성했을 때가 내 생애 최고의 날이었고 평생 잊을 수 없었다며1사단장으로 한미 장병 만5천여명을 지휘하며 고향인 평남 강서를 탈환했다고 말했다.1952년 12월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인의 방한 때 한국군 증강 필요성을 브리핑해 참모총장 재임 당시 육군 10개 사단을 20개 사단으로 확대한 일화도 있다.
1948년 정부 수립 직후 군 내부 남로당 숙청 분위기 속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구명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백 장군은 1960년 대장으로 전역한 뒤 외교관과 교통부 장관 등을 지냈으며 장관 재직 시절 서울 지하철 1호선 건설을 진두지휘했다.하지만 일제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탓에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명단에 이름이 오르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백 장군이 6·25전쟁 당시 겪은 일화 등은 미 국립보병박물관에 육성 보관되어 있다.태극무공훈장2회,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미국 은성무공훈장, 캐나다 무공훈장 등을 비롯해 미국 코리아소사이어티 '2010 밴 플리트 상' 등을 받았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되며, 발인은 한국시간 15일 아침 7시로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