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턴트 신앙을 거부하라
[하이코리언뉴스] 산업사회의 발달, 그것은 식생활의 대변혁을 가져왔습니다. 가족중심에서 일중심의 변화는 가족애의 파괴와 가족이 함께 보낼 시간의 권리가 반토막나 버렸습니다. 정성이 담긴 저녁대신 fast food, 인스턴트 음식으로 식탁이 채워졌습니다. 그 후 정크, 깡통푸드들이 식탁을 점령해 버렸습니다.
햄버거, 피자 등 우리입맛을 채우던 음식들은 결국 더 잘 살고자 시작했던 산업혁명이 우리의 삶의 질과 수명까지 위협하는 결과를 낳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음식들은 몸에 해로운 중성지방과 고밀도 콜레스테롤을 증가시키고 무엇보다도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을 막아 돌연사의 주 원인인 심근 경색과 협심증을 유발시키고 말았습니다. 조금 더 잘 살려는 시도가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를 낳았습니다.
음식만 아니라 언제부턴가 인스턴트 신앙이 이민교회안에 기승을 부리고 만연해 들어왔습니다. 그 결과 고결한 신앙의 유산들이 싸구려 정크 신앙으로 바뀌어버린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교권주의입니다. 미국안에 세워진 한인 교회들안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광경은 여전히 목사나 장로의 힘과 권력은 근접할 수 없는 지성소 수준입니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권위와 질서가 아닌 세상방법의 권력과 힘이 목사라는 한 사람에게 집약되고, 편중될 때 목사는 더 이상 예수님의 종이자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 교회는 바로 정크교회입니다.
이민사회의 신앙 정통성은 그 출처가 불분명합니다. 성경적이지도 그렇다고 기독교 정통에 입각하지 도 않습니다. 때론 편법적 수단이 이상한 정통을 만들어 놓은 기형적 신앙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임스 패커 목사님은 이런 신앙관을 "독실한 신앙인이라는 위장막 뒤에 숨어 안이하게 지내려 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원인이 값을 치루려고 하지 않는 위장된 경건에서 나온 것이며 정크 영성에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결국 대가와 값을 치루려고 하지 않는 위장된 경건은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을 포기해 버렸습니다. 어느덧 고등종교에 심취해 영혼의 메마름과 황폐해 감을 알지 못한 체 무엇인지 모르게 분주하고 바쁘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면 그것이 좋은 신앙인인 것처럼 심각한 착각에 빠져들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에 대해 고민하거나, 그분을 경험하고 싶거나, 그분의 전재성에 대한 두려운 경외감조차 가지지 않습니다. 그저 케주얼하고 손쉬운 방식으로 소중한 것을 가지려는 얇팍한 꼼수를 부리려고 합니다. 천국 입성티켓(?) 그렇게 손쉽게, 우리가 생각하듯 얻을 수 있을까요? 그저 던져주는 먹이 감 넙쭉 받아먹고, 그 맛이 쓰네, 다네, 싱겁네, 상했네... 뭐 그렇게 뒷말들하기 바쁜 분들에게까지 그 티켓(?)이 주어질지는 모르겠습니다. 왜 그렇게 된 것입니까?
바로 인스턴트방식의 신앙훈련과 설교에 길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양육 프로그램들은 철저히 예수님이 아닌 본교회에 충성하는 사람이 되도록 짜여있고, 그 일에 철저히 순종하는 종교인들을 양성해 낸 것입니다. 오늘날 이민교회는 눈씻고 봐도 예수님, 바로 그분 을 위해 자기 목숨 내 던질 그분의 제자로 훈련된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토미테디는 그의 책“하나님 당신을 갈망합니다”에서“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그분의 혜택 을 구하는 일을 그만두고 그분 자신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이상 그분의 손이 아니라 그분의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 라고 역설합니다. 이 시대 인스턴트교회들을 위해 일갈하는 시대적 선지자의 외침입니다. 저는 독자들이 이책을 무릎으로 읽기를 추천합니다. 저는 이 책을 눈물도 읽었습니다. 도저히 울지 않고는 읽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면 그때 저는 하나님께로부터 너무 멀어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인스턴트 신앙을 버리려거든 그분을 위해 울어야 합니다. 그분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설쳐야 합니다. 갈망이 회복되면 우리는 더 이상 인스턴트 음식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귀를 솔깃하게 하는 말들에 현혹되지 않고,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그분의 말씀과 음성앞에 매료되어지고, 그분의 강력한 임재가 위장된 경건을 뚫고 여러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경험하게 될것입니다.
인스턴트가 준 패악중에 하나는 탄산음료 중독입니다. 더 강력하고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지게 합니다. 한번 마시면 목을 톡 쏴 신경계통을 마비시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성령으로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교회들이 이런 표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성령충만한 교회, 말씀 충만한 교회"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갈망이란 "지금의 상태에 만족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성령 충만한 교회라고" 부르짖고 쇄뇌 시켜도 우리안에 갈망이 없는 한 성령님은 그곳에 역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아니고는 결코 하나님 자신에 대한 갈망도, 목마름도, 굶주림도 오지 않기때문 입니다.
성령님은 교회 간판보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가진 사람들을 보시고 임하셔서 그곳을 교회라 부르시고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간판만 교회입니까? 아니면 간판 이상의 교회입니까? 저는 한 주간 준비한 설교를 가급적 성도입장에 서서 점검해보려고 합니다. 한주간 내내 고민하지만 사실 건질 것이 별로 없습니다. 실망할 때가 대부분입니다. 만약 이걸 내가 먹어도 이렇게 맛이 없어 보이는데 성도들에게 이것을 준다면...정말 미안스럽고 부끄러울때가 수 없이 많습니다.그래서 항상 질문합니다. 정말 나는 성령의 이끌림을 받고있는가? 전하는 말씀안으로 기름부으심이 흐르고 있는가? 지금 내 영혼은 하나님에 대한 갈망 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는가? 여러분도 위장된 경건을 찢고 스스로 이 질문을 여러분 자신에게 한번 던져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성령의 이끌림을 받고 있는가?', '나의 삶에는 기름 부으심이 흐르고 있는가?', '지금 내 영혼은 하나님에 대한 갈망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는가?' 이민 교회의 살길은 건물도, 재산도, 사회적 명예도, 그 어떤 자랑할 것도 아닌 바로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서 밀어 내버린 그분을 그분의 자리로 다시 돌아오시게 하는 것뿐입니다.[올랜도 선한목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