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풍진 변호사] "쇼팽 피아노 연주대회"

Submitted byeditor on금, 10/31/2025 - 19:12

[칼럼 = 하이코리언뉴스] 편집국 = 쇼팽 피아노 연주대회는 그의 조국인 폴랜드에서 1927년에 창설되어, 바로 어제 같은데 제 19회의 대회를 치루었다. 전세계에 피아노 연주대회가 각곳에 많은데 쇼팽대회를 제일위로 친다. 전쟁때를 빼놓고는 꼬박이 5 년에 한번 치루는 대회는, 참가자 피아니스트 들이나 대회준비자들이나 모두 같히 상당한 곤욕을 겪는다. 

"Credit : theweekly.co.kr

이번 제 19회에는 모두 642 명이 참가했는데, 하나같히 귀신아니면 신들린 사람들 같히 연주를 잘했다.  5월 한달에 걸쳐1차 심사로 참가자를 대부분 추려내고, 쉬었다가 10월에 최종심사를 하는데, 청중석이 1,000 이 넘는 입장권은 매매시작에서 부터30분만에 매진되었다.   

이번에는, 아니 이번에도, 최종 결승자 11 명중, 8명이 중국계 이름, 2 명이 일본이름, 딱 하나가 주최측 출신인 폴란드인 이었다.  일등은 카나다 국적인 중국계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5년전 18대 대회에서도 일등이 카나다 국적인 중국계 청년이었고, 그전 17대 대회에서 일등은 우리의 자랑인 조성진이었다. 이에 폴란드에서는 데모가 일어났다. 쇼팽은 폴란드인이고, 쇼팽 대회는폴란드 땅에서, 폴란드 준비위원들이 뛰는데, 웬 동양인들이 일등을 비롯하여 최종 승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간다고, 격결한 시위를 했다.  

동양인인 나로서도 약간 미안하고 무안하지만, 일등은 그냥했나? 17명의 명의 심사위원들이 엄중한 검토로 적어낸 점수를 종합하여 등수가 나온것이다. 하긴 17회때에 우리 조성진도 어느 한 심사원이 무슨 앙심인지 조성진을 거지반 빵점으로 메겨놓았지만 원체 실력이 월등하여 다른 모든 심사원들이 만점 가까운 점수를 주어, 일등을 하고도 점수가 넉넉히 남았다.  

쇼팽의 선률은 독특하여서 한줄만 들어도 쇼팽인줄 알아듣는다. 대부분의 선률이 장조대신 단조로, 애조를 띄운 곡들이다. 감성적이고, 시적이고, 우아하고, 섬세하고, 낭만적이고,  열정적이고, 달콤하고, 씁슬하고, 예민하고, 연약한 선률들이다. 베토벤 같히 웅장하고 힘찬맛은 아니다. 또 바흐 같히 단조로움 속에 아름다움이 있는것도 아니다. 모찰트같히 경쾌하고 사뿐한 맛이 있는것도 아니다. 쇼팽의 독특한 선률은 청중들의 심금을 사로잡는다. 

피아니스트의 천재성은 피아노를 처음 만지는 순간에 들어난다. 보통 아이가 6세면 부모들이 한번 해보자고 시키는 피아노 건반에 손을 대자, 아이의 천재성이 즉시 들어난다.  쇼팽도 6세에 시작한 피아노를 금방 달인같히 두들기더니, 7살에 작곡을 하였다.  

그의 아버지가 16세에 프랑스에서 폴랜드로 이민 갔듯이, 그는 20세에 폴랜드에서 프랑스로 이주헀다. 그는, 그의 피아노 작곡과 연주로, 파리의 귀족사회애서 환영을 받았다. 더구나, 그는 귀족이자  여류작가인 죠르쥬 쌍 이라는 여인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편안한 귀족 생활을 했다. 이건,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외롭고 비참한 생활을 했던 배토밴과는 대조된다.   하긴 그당시 음악가 또는 작곡가로 부유하고 행복한 생을 산 거장들은 없다, 브람스, 슈버트, 차이코프스키, 등등 모두 가난과 외로움에 시달리는 일생을 보냈다. 

쇼팽은 파리의 귀족사회에서 화려한 나날을 보냈지만 아쉽게도 폐병에 시달리다가 드디어 숨을 거두었다. 그의 나이는 39세. 그는 파리에 안치되었지만,  그의 뜻대로, 그의 심장은 폴랜드 와쏘에 안치되어 있다. 

폴랜드는 쇼팽이 한없이 자랑스러워서 그의 기일 88주년에 소팽 피아노 연주 대외를 시작했다. 그후 전세계에서 날고 기는 피아니스트들이 와쏘에 와서 수년간 다듬은 재능을 피고간다. 지금은 세계 최고의 명성을 날리는 대회가 되었다. 쇼팽은 나의 영웅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서, 쇼팽 연주 대회에서 최종결승까지 올라간 피아니스트 들도 나의 영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