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째서 재난영화- 특히 人災-를 이토록 세련되게 잘 다루는 걸까? 원인과 결과, 상황을 굳이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고도 한 컷 한 컷의 단면만으로도 충분히 생생한 메타포가 읽혀진다.
게다가 요즘엔 사건 그 자체의 무거움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단 사회와 인간군상의 일상적 스케치를 대비시킨 우회적 기법으로 한층 경쾌하면서도 인상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 <터널>은 그런 의미에서 <부산행>과 형제이다. 엄청난 재난 앞에 폼 잡고 그럴듯하게 일하는 척, 걱정하는 척, 해결하는 척 척만해대는 리더십 부재와 호들갑스럽고 저열한 저널리즘, 내게 닥치기 전까지 애써 모른척 외면하며 넘어가려는 비겁함과 보신주의 등.. 너무나 익숙해져 무감각한 현실이 하정우 배두나 오달수의 내공 실린 연기력에 실려 심쿵하게 다가온다. 애둘러 맘 상하지 않게 말하는 게 더 힘든 법. 한국 영화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출처: 이미지 21 하민회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