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하이코리언뉴스] 어느 무더운 한 여름 저녁모임에서 내가 질문을 하나 던지어 큰 화제거리가 되었다. “당신이 지금 갑자기 천만불이 조건없이 손에 쥐어지면 무엇을 할겁니까?”
그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이 50대의 전문직업인으로 경제적으로 중상급인 한국인과 백인들이었다. 저녁식사후로 포도주 한잔씩 손에 들고 가벼운 잡담을 하던중, 나의 질문에 모두 놀랐다가는 즉시 즐거운 꿈속으로 들어가는듯 했다. 곧 미소를 지으며, 하나씩 자기의 소원을 털어놓기 시작하는데, 어떤 사람이 천만불 갖고는 안되니 이천만불로 올려달라고 부탁을 해서, 그러자고 후하게 인심썼다.
한두명의 엉뚱한 답을 빼고는 놀랄정도로 답이 같았다. 여자는 모두, “거주주택 향상” 이라고 했고, 남자들은 전부, “자가용 비행기 구입” 이라고 했다.
거기있던 사람들은 거지반 모두가 좋은 집들의 소유자및 거주자 이었음에도 “더 좋은집”을 원했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의 집” 은 너무 평범한 소원이라 “에이” 하며 모두 웃어 버렸고, 다른 소원이 나왔다. “집안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집” 이라고 하나가 말하자, “정원에서도 길을 잃어버리는 집”이 나왔다. 이어서, “집안과 정원이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나는지 모르는 집,” “천장부터 마루바닥까지 유리로 된집,” “폭이 넓은 층계가 반원을 그리며 이층으로 올라가는 집,” “침실이 아닌 거실이 몇개 되는집” 등등 우선 면적이 엄청 큰 집들로, 거주지에 대한 꿈같은 욕심이 한이 없었다.
왠지 나의 생각은 우리 조상들이 살아왔던 집으로 날라갔다. 오천년의 역사와 문화를 늘 자랑하지만, 거주환경에 대해서는 자랑할게 전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조상들의 빈약한 거주환경은 지구상 미개발지역의 원주민들 수준이다. 좁은 면적의 방은 마루 양끝에 고작 두개인데, 천장은 낮고, 방문은 고개를 숙여야만 드나들었고, 마른 짚풀을 지붕으로 얹어놓은 집이 우리조상들의 평균집이었다. 우리 풍속도에도 많이 나와있고, 용인시 민속촌을 가보아도 전시해 놓은 집들이니, 서울 토백이래도 내가 틀린말을 하는건 아니다.
반면, 유럽에서는 보잘것 없는 평민으로 태어나서 커다란 업적을 남기고 간 사럼들의 보존된 출생지및 성장가옥을 보면 한국의 평균집과는 상대가 안되게, 크고 높다. 수백년동안 보존된 평민들의 가옥이 돌로지은 이층내지 삼층으로 공간도 넓고 모양새도 아름답다.
우리 문화는 고대적 부터 고도화 되어있어 세계무대에서 인정을 받고있으며, 식생활도 최고의 자연건강 요리법을 다양하게 써왔고, 의상도 우아하고 아름다우나, 거주지만은 고개를 푹 떨어트리게 열악하였다. 왜 거주지만이 그렇게도 바닥 수준이었을까?
거주지 뿐만이 아니라 모든 건축이나 건물이 우리 역사속에서는 몹시 빈약했다. 왕의 거처지이자 정부기관이었던 궁궐도, 대원군이 무리를 해서 복귀시키었던 경복궁 하나만이 간신히 외국인에게 보여줄만하다. 사찰들도 규모가 작고 모두 목조건물이다. 도대체 돌을 쓰지 않았다. 돌산이 많은 국토인데 돌을 못쓰고 안썼다. 나무, 진훍, 풀줄거리가 건축자재 이었으니 볼품도 없고, 화재도 빈번하여 그나마 반반한 건물은 툭하면 화마에 소멸되었다.
건물 면적만 작은것이 아니고 높히 올라가지도 않았다. 실은 높은 건물은 아에 지구상에 있는줄을 몰랐던가 한다. 이웃나라 일본만 해도 16세기 17세기에 건축한 성들이 5층까지 올라간곳이 한두개가 아니었고, 유렵의 건물들은 몇백년전에 지은것들이 모두 하늘을 찌르게 높히 솟아있다. 우리나라는 이층도 없는 단층뿐이니, 층계관념이 없었나 보다.
우리 조상들은 오천년을 그렇개 납작하게 엎드려 살다가, 최근 불과 오십년 이내로 수십층의 고층 건물이 헤아릴수 없게 올라갔고, 대한민국 국토를 떠나 머나먼 외국땅에서도 전세계에서 으뜸가는 웅장하고 강건한 건물들을 짓고있다. 어떠한 여건으로 최악에서 최상으로 순식간에 바뀌었나?
한국인의 잠재했던 우수성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악조건에서 해방되면서, 돌출하듯 솟아나와 꽃이 만발한것일까?
우리의 사사로운 주변에도, 한국인 이민 일세들이 미국땅에서 어느 민족보다도 멋있는 주택을 갖고있는 분이 상당히 많다. 우리들이 원하는 것을 획득하는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고, 경제적으로 능력것 일하여 부를 축재하게 해주고, 사회적으로 그러한 권리와 노력을 장려해준다. 한국 오천년 동안에는 없었던 자유와 권리이다.
이제야 오천년의 무관심에서 깨어나고 무능력에서 벗어나서 꿈만 같았던 거주환경을 이루어 놓은것은 한인들의 또 하나의 능력이다. 한 여름밤의 황당한 꿈이 모두 현실화 되기를 바라며, 경쾌한 마음으로 귀가했다.
칼럼출처 : 김풍진 변호사 < pjkimb@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