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풍진 변호사] "독립기념일 7월4일"

Submitted byeditor on수, 06/28/2023 - 09:32

[SF = 하이코리언뉴스] =  7월4일은 독립기념일 미국에서 일년중 가장 큰 국경일이다. 정부기관및 사사로운 기관들은 모두 문을 닫고, 일반인들은, 피크닉, 퍼레이드, 뒷마당의 바비큐등을 벌리고, 날이 어두워지면 불꽃놀이로 밤하늘을 호화롭게 장식한다. 1776년 7월 4일 전후로 일어났던 수많은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으로 다급했고 위태로웠던 사태는 다 잊어버리고, 모두가 하루를 즐겁게만 보낸다.  

"

그러니까 247년전이었다. 미국은 그당시 영국의 식민지로 영국정부에 세금만 바치고 대표권은 없었다.  인구는 영국이 약 천만명에 미국이 약200 만명이었고, 미국땅에서도 영국 못지않게 부호 대지주들도 속출하였고, 지성적으로도 월등한  인재들이 다수로 나왔다.  그러한 상황에서 독립을 원했던것은  당연했지만, 그것을 성공시키는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조상들도 일제 식민지 통치하에서, 위대한 독립 이념과, 치밀한 조직과, 불타는 애국심으로 독립운동을 일으켰지만, 잔인한 총칼앞에 대응 못하고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영국은 당시 경제적 군사적으로 세계 최강국 이었으니, 독립 운동가들은 비장한 각오를 해야했다. 독립은 결국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어졌으나, 과연 누가 제일 큰 공헌을 했느냐가 나의 관심거리이었다. 그리고 그건 쉽게 누구라고 할수없는 일이기에 더우기 관심이 커지었다. 

당시 오륙십명의 쟁쟁한 실력을 갖추은 독립운동가들중, 나는 토마스 제퍼슨과 죠지 워싱턴을 손꼽는다. 토마스 제퍼슨의 독립선언문 작성과 죠지 워싱턴의 전투 승리가  미국이라는 위대한 국가를 탄생시키었다.

독립 선언문은 미국의 13주 대표들이 모여서 “독립선언문 작성 분과위원” 을 설치하여, 토마스 제퍼슨, 벤자민 프랭클린 등 지력과 문장력이 뛰어난 다섯사람을 임명하였다. 주로 토마스 제퍼슨이 작성했는데, 그 내용이나 문장은 다시 볼수없는 월등한 문서이다.

이 선언문의 골짜는, “인간의 절대적인 권리는, 생명, 자유, 그리고, 행복의 추구이다,” 라고 했다.  우리는 지금 이런권리를 당연한것 처럼 생각하나, 그 당시에 지구상 이러한 기본권리는 없었다. 하긴 오늘까지도 이러한 권리없이 사는 국민이 엄청많다. 개인의 자유라니, 어림도 없는 소리이고, 인간목숨은 파리 목숨만도 못하고, 행복을 추구하다니, 비웃음만 자아낸다.         

더 나아가서, “모든 인간은 동등하게 태어났다,” 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건 주석이 필요하다. 모든 인간이 동등하게 태어난게 아니고, 모든 인간이 동등한 권리를 갖고 태어났다는 문구로 알아 들어야 한다. 태어날때 높은데서 태어난 아기도  낮은데서 태어난 아기도, 그들의 권리는 동등하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각 개인은 이러한 권리를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적혀있다

이러한 개인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주장이외로, 독립선언문은 국가개념을 명시하면서, 국가는 국민을 위한 정부이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개념아래, 미국시민들은 정치가들을 직접 선출하고, 정부의 행위를 낯낯히 지켜보며, 시정요구도 한다.  반면에 정치권자의 선출권도 없고, 정부에게 한바디도 이견을 제출못하고 사는 국민들이 아직도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가?      

이렇게 위대한 독립개념을 받들면서 새로운 국가를 창설하는데, 식민지인 미국은  본국인 영국과의 전쟁을 맞이하게 되었고, 이는 문자 그대로 미국인 달걀이 영국인 바위를 깨야 했다. 13주 대표들은 주저없이 믿음직한  44세의 죠지 워싱턴을 총참모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죠지 워싱턴의 전투경험이라곤, 본토 주민 인디안 정복에 잠간 싸워본게 전부이었다. 영국군이 과연 몰려오자, 죠지 워싱턴은 훈련도 제대로 못받은 젊은이들을 끌고,  빠득한 자금속에서 전투장에 나갔다. 그는 총사령관으로 사병들 보디 더 잘 먹지않았고, 숙소도 장교숙소를 찾지않고 졸병들과 같히 어려운 생활을 했다. 이러한 그의 성품과 인격에 감격하여, 참모들과 병정들은 목숨을 걸고 전투를 접했다.

그는 많은 전투에서 참패를 당하고, 굴욕도 당했고, 목숨도 겨우 건지었다. 열악한 전투조건에서 당연한 결과였으나, 그는 절대로 기권 안하고, 실패에서 습득한 전략을 펼치면서 끝내 승리를 거두었다.  드디어 미국이라는 신생국가가 탄생하었다.  

미국은 곧 죠지 워싱턴을 신생국가의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하였다. 그는 전례없는 최초의 민주주의 정권을 훌륭하게 이끌어 갔고, 4년 임기가 두번 끝나자, 세번째 임기의 만장일치 추대를 끝내 사양했다.  “내가 8년 이상을 집권한다면, 바로 내가 평생을 싸워왔던 독재자가 되는데, 그건 아니야.” 그는 사저인 마운트 버논 농가로 은퇴하여 가족하고 평화롭게 살다가, 67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그후 미국은 일장월취로 발전해가면서 전세계의 민주주의 대표국가이자 최강국으로 세계를 이끌어 가고있다.   칼럼출처 : 김풍진 변호사 < pjkimb@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