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칼럼] 가을을 보내며...

Submitted byeditor on화, 11/10/2020 - 14:09

[하이코리언뉴스/편집국] = 만추(晩秋)의 계절이다.낙엽이 지고있다. 매년이 늘 그러했듯이 올해도 대자연속의 산천과 대지 위에는 아름답게 단풍이 물들어 우리들의 마음을 온통 붉고 노랗게 채색하고 정든 가지를 떠나고있다. 봄이 설렘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그리움의 계절이다. 모진 추위 찬바람속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고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는것을 시작으로, 겨울을 인내한 꽃들이 일제히 아우성치며 앞다투어 피어나는 봄은 새롭게 전개될 세상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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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을은 봄의 설렘과 여름의 열정을 뒤로하고 흘러간 날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한 계절이다.깊은 밤, 창가에는 노란 은행잎이 져가고 시간은 가을바람에 실려 또 하나의 추억을 잉태시킨다. 울긋불긋 고운 옷으로 갈아입고 서늘한 바람에 화려하면서도 처연(凄然)하게 떨어지는 낙엽은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흘러간 세월들은 돌이킬수 없기에 더욱 애틋하고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낙엽은 떨어져 세월속에 썪어간다. 생선이 썪을때는 코를 들수없는 악취가 풍기고 병균이 득실거리지만 낙엽이 썪을때는 고운 향기가 풍긴다. 떨어진 낙엽은 썩어가지만 이듬해 봄이 오면 또다시 새잎을 돋게 하고 꽃을 피우는 나무의 자양분이 되는것이다. 도시의 낙엽들은 안스럽다. 빗물 한방울 스며들수 없는 차갑고 딱딱한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낙엽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스산한바람 따라 정처없이 방황한다. 그 모습은 마치 실향민의 눈물같기도 하고 사랑을 잃은 사람의 슬픈 발걸음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가을은 비움의 계절이다. 푸른 여름을 노래하던 나뭇가지가 잎을 내려놓듯 이 가을엔 무거운 짐을 살포시 내려놓아야 한다. 모든 가식과 위선을 떨쳐버리고 깊은 자아 성찰과 함께 참회록을 써야 한다. 지나친 욕심이 나의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는가?  나의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행동이 남의 가슴에 못을 박은 적은 없었는가?  마음속에 있는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을때 우리는 비로서 자유를 얻는 것이거늘, 나의 영혼을 아름답게 가꾸지 못하고 온갖 불평,불만,감정,시기와 질투,욕망에 사로잡혀 참 평화를 상실하고 있지는 않는가?

가을은 별리(別離)의 계절이다. 꽃이 지고, 낙엽도 지고, 우리의 인생도 흘러간다. 이 세상의 모든것은 언젠가는 떠나는 것이요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도 낙엽처럼 언젠가는 떠날 준비를 해야한다. 모든 욕심과 근심도, 푸른날의 열정과 잠 못 이루게 하던 번뇌도 조용히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모든것들을 사랑으로 보듬으며 한없이 축복을 빌어주어야한다. 

언젠가는 우리도 이세상을 떠나야 할 가련한 낙엽인 것을………. 낙엽이 바람에 휘날리며 져 가고 있다. 잘 가거라. 잘 가거라 낙엽아, 가을아............그리움이여 !   낙엽은 지고 가을은떠나가고 있다. 나는 이렇게 덧 없이 가을을 보내지만 이듬해 봄, 또다시 파릇파릇하게 돋아날 연초록의 새 잎을 기다리고 있다.

가을엔 많은 사람들이 시상을 느끼고 또한 시인이 된다. 나도 시인이 되어 가을바람 속에 훨훨 날아본다.가름바람에 나뭇잎 떨고 풀잎은 고개 숙이니 겨울 동장군이 올 날도 멀지않은듯 싶다. 서늘한 가을바람에 옷은 두터워지고 마음은 허전해진다. 이러한 가을바람이 불면 마음을 데워서 욕심을 꺼 버려야 한다. 그리고 마음에 울림이 있어야 육신도 생각도 겨울을 버틸수 있다.

봄이면 꽃이 단풍보다 아름답다 하고, 가을에는 단풍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한다. 온실에서 자란 꽃이 쉬이 시들고, 들에서 자란 야생화 꽃은 쉬이 시들지 않는다. 가을을 떠나 보낼때마다 아쉬움이 남지만 우리들의 인생은 어차피 기다리며 사는 것, 이제 다가오는 추운 겨울이 지나가면 메마른 가지에 새 순이 나오고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듯이 자연에 순응하며 나는 물처럼 살아가리라. 지난 11월7일은 겨울이 시작되는 입동(立冬), 그런데 며칠전 이미 입동이 지나갔다. 입동은 겨울이 찾아왔다는 증거이고 보니, 어제의 단풍이 고왔다고, 가을이 있어 행복 했었노라고 말하리라. 흩어져 딩구는 낙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사랑했던 가을을 무심히 보내줘야겠다. 가을과의 작별은 더 애잔하고 가슴속이 비어오며 쓸쓸해진다.

곱게 물든 낙엽이 꽃이라면 가을은 두번째 봄이다, 라고 알베르 까뮈는 말했다.가을은 결실의 풍요로움을 느낄수 있는 계절이다. 결실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봄에서 여름을 지나 가을에 결실을 맺기까지, 이른봄 꽃샘 추위부터 한여름의 폭우와 낙뢰, 세찬 비비람 등의 기막힌 사건들을 겪어야 한다. 이러한 악천후와 초가을의 태풍까지 견뎌내야 좋은 결실을 맺을수 있다. 봄에 핀 꽃은 아름답지만 처음 세상을 향해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만큼꽃송이마다 두려움이 숨어있다. 

비록 지금 꽃은 피우지만 그자리에 열매가 맺힐때까지 떨어지지않고 온전히 제 생을 다 살아낼수 있을지 확신할수 없는 불안감, 그것은 마치 의욕은 넘치나 갈피를 잡지못해 좌충우돌 하는 20대의 젊음과 같다. 그러나 가을은 다르다. 가을 단풍잎은 비록 봄에 피는 꽃같이 부드럽고 고운 꽃잎은 아니지만 여러 계절을 견디면서 축적된 시간이 들어있다. 피석하고 윤기없는 잎을 지녔지만 가을의 봄꽃은 여러 계절을 보내면서 배운 지혜로 물든 색이다. 바닥에 떨어져 썪는다 해도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거름이되어 새 생명으로 환생한다는 것을 아는 꽃이다. 행여 인생의 가을에 접어들어 쓸쓸하다고 허무한 삶을 살지 말자. 우리의 가을은 두번째 봄이다.

이제 아쉽지만 가을을 보내줘야겠다. 내가 붙잡는다고 그자리에 머물러 있을 가을이 아니다. 저 멀리서 겨울이 시퍼렇게 눈을뜨고 가을이 어서 떠나 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기다리는 미학만이 존재할 뿐이다. 1년후에 다시 만날 가을을…………… 매년 계절이 바뀔때마다 만남 헤어짐을 연습해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을을 떠나 보낼때는 늘 뭔가 허전하고 아쉽기만 하다. 인연이든 계절이든 이렇게 헤어지고 작별을 한다는 것은 언제나 아쉬움과 미련을 남겨준다.

나이를 먹으면서 입버릇처럼 중얼거리는 말이 있다. 마음을 비우자는 말이다. 말이야 멋 있지만 마음을 비운다는 건 참으로 어렵다. 그게 그렇게 여려운 까닭은 마음만 비운다고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운 마음으로는 중심이 흔들려 자칫 하다가는 풍파를 만나 파선하기 십상이다. 그 빈자리에 다른 무엇으로 채워 넣을 꼿꼿한 냉철함이나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위험하다. 차디찬 바람과 싸우면서도 노하기는 커녕 휘파람 불듯 노래할수 있는 겨울 나무의 높은 고독이라면 어떨까............떠나는 가을 앞에서 다가올 인생의 겨울을 모처럼 생각 한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겨울은 오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