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는 이세돌에게 속임수를 썼을까?
지피지기백전불패(知彼知己百戰不敗)라는데, 알파고는 이세돌을 아는데, 이세돌은 알파고를 몰랐던 것일까요? “센 돌” 이세돌 9단이 사람들의 예상과 반대로 연거푸 졌습니다. 하루 쉬면서 ‘적’을 분석하고 나면 과연 역전승이 가능할까요? 두 번째 대국이 끝나고, 바둑계에서는 “정말 어렵겠다!”는 탄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신문과 방송이 이번 대전의 의미와 과정, 중간결과 등을 분석했으니, 저는 남들이 이야기하지 않는 것만 짚어보려고 합니다. 대부분의 언론에서 “기계와 인간의 싸움에서 기계가 이겼다”고 보도했는데, 그렇게 단순하게 볼 사안은 아닌 듯합니다.
첫째, 사람의 정신과 컴퓨터의 프로그램은 본질적으로 다를까요?
과학의 눈으로 보면 사람의 정신활동은 뇌와 떼려야 뗄 수가 없습니다. 생물학에서는 무에서 유기체가 생기고 이것이 다양하게 진화했다고 설명합니다. 마음이 뇌 활동이 드러난 것이라면 도대체 컴퓨터와 무엇이 다를까요? 뇌=컴퓨터, 유전자=소프트웨어, 정신=프로그램이라면…. 정신은 뇌활동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요?
둘째, 컴퓨터가 사람을 속일 수가 있을까요?
역사적 대국의 첫날 중반에 알파고가 마치 악수(惡手)를 두는 듯했고, 이세돌이 방심하면서 결국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속임수라고 할 수가 있을까요? 우리는 속임수를 악의(惡意)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지만, 속임수가 상대방의 행동패턴을 읽고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라면 속임수라고도 할 수 있을 듯도 합니다.
셋째, 인공지능이 감정을 가질 수가 있을까요?
알파고는 이세돌의 감정을 혼란시키게 하는 데에는 성공한 듯합니다. 상대방의 실력에 자신의 행동을 맞추고, 대세에 지장이 없는 뻔한 실수를 한다는 점에서 얄밉기까지 합니다.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지요. 인간의 감정이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데 뿌리를 박고 있어서 컴퓨터에 감정을 만들 이유가 없겠지만, 기능적 이유에서 필요하다면 못 만들 이유도 없을 듯합니다.
넷째, 사람과 컴퓨터의 경계는 허물어질 수 있을까요?
알파고의 주인인 구글의 공동창업자들은 10여 년 전부터 뇌와 웹이 연결되는 세상을 꿈꾼다고 공언했습니다. 이들은 “사람들이 자기 머리에 이식한 장치를 이용해 인터넷에 바로 접속할 수 있는 시대, 다시 말해서 전 세계의 정보를 마치 머릿속에 있는 여러 생각 중 하나인 것처럼 여기게 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했지요. 인체와 컴퓨터, 인터넷 등의 경계가 없는 시대가 곧 온다는 것이지요.
미국의 과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10여 년 전 인간과 외부 기술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점을 ‘특이점(Singularity)’이라고 이름 붙이고 2045년에 그 시기가 온다고 주장했는데, 지난해에는 2030년 전에 도래할 것으로 수정했습니다.
컴퓨터는 암 진단에서 이미 의사와의 내기에서 이겼고, 정신질환의 세계를 캐고 있을 정도로 급속히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알파고가 이긴 데 대해 크게 놀라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세돌이 구글의 마케팅 작전에 걸려들었다고나 할까요? 알파고 안에는 이세돌까지 있으니….
특이점이 오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본질에 대해서 좀 더 심사숙고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기계와 과연 무엇이 다를까? 기계의 세상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한다면 너무 슬프지 않을까요? ** 이성주 건강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