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의 칼럼 "귀뜨라미 우는 고독한 가을밤에

Submitted byeditor on화, 09/20/2016 - 12:48

정원 저쪽 한편의 나무밑에서 귀뜨라미가 똘똘똘 울고있다. 늦여름밤의 온갖 풀벌레들소리속에서 귀뜨라미소리만 또렷이 들리기 시작하면 가을이 오는것이다. 가을을 가장먼저 알아차리는게 귀뜨라미라서 추초생(秋初生)이라 불리어지기도하고 여인들에게 길쌈할때를 알려준다고해서 촉직(促織)이라는 이름도 얻어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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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난얘기로 서양에서는 1분동안 가만히 귀를귀울여 우는 횟수를세어 거기에다 37을더하면 화씨온도가된다는 속설이 전해진다.가령 지금 25번을 울었다면 현재의온도가 화씨62도이다. 우리말에서는 귀뚤귀뚤하는 그소리에서 귀뚜리, 또는 귀뚜라미라는 이름을 얻었고, 영어를 쓰는사람들에게는 그소리가 크리크리라고 들렸던지 크리켓(Cricket)이라고 이름을 불리는, 그곤충은 가을을알리는 전령사(傳令使)이다. 가을의 정서적 상징이라면 코스모스와 국화, 낙엽,그리고 귀뜨라미가 대표적이라 할것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쓸쓸하고 고독한 애상(哀想)을 자아내는것이 귀뜨라미의 우는소리일것이다. 이울음소리에는 조락(凋落)과 무상(無常)과 고독이 함께한 애잔함이 겹친다. 

시인들은 (귀뜨라미 우는 고독하고 외로운밤에......)라는 표현을 많이써서 시를 짓기도했다. 일엽지추(一葉知秋)라는 말 그대로 오동나무잎이 하나떨어지는것을 보고 가을이 다가옴을 안다고 하였는데,기실 그런 연유조차없이 밤새 울어대는 귀뜨라미의 처량한 울음소리에 새삼놀라니,아마도 그간 지난여름철 몹시도 무더웠던 날씨속에 많이도 시달렸던때문인가보다. 절기로서는 요즘 자연은 결실과 수확의 풍요로운때임에도 사람들에게는 고독과 우수의 철로 그렇게 여겨지기도하는 계절이다. 낮의길이가 쥐꼬리만큼 짧아지고 밤의길이가 소꼬리만치 길어진 요즘 추야장장 기나긴 가을밤에 어떤 여인에게있어서는 몸서리처지도록 고독하고 외로운 애절한 아픔이 되기도한다.

더욱이 이땅의 옛여인들에게있어서 독수공방은 한시대가 남기고간 어쩔수없는 비극이었다. 이 여인들을 칭하여 열녀라고도하는데 그여인들에게 고독이라는 단어는 햇빛에 비치어 따라다니는 그림자같은 존재로써 뗄래야 뗄수없고 떨어지지도않는 분신과도 같은 악연의 존재였다. 

충신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이요, 열녀는 불사이부(不事二夫)라. 포은 정몽주와 사육신의 한사람인 성삼문 못지않은 무수한 열녀들이 고독을 이겨가며 독수공방에 생겨났다. 여자들의 정조와 지조를 헌 고무신짝처럼 하찮게여기는 지금의 세상에서는 정말로 따르기힘든 그녀들의 고매한 삶을 재조명해볼때, 이런 의미에서 가을의 고독이란 풍요로운 정신적수확을 거둘수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옛날 독수공방을 지킨 그런 비운의 여인중에는 고독속에 자기를 깨끗이 지켜 가냘픈 붓 한자루에 의지하여 시(詩)를 통해 인생을 승화시킨 열부(烈婦)도 있었다.

주옥같은 시를 후세에 남긴 허난설헌(許蘭雪軒)과 같은여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다음의 허난설헌이 지은 규원(閨怨)이란 제목의 시는 시제(詩題0가 말하듯이 긴긴 가을밤에 귀뜨라미와 더불어 노래하며 운우(雲雨)의 세계를  초월해갔던 그러한 내용이 담겨져있다. (달빛이 가득한다락에는 가을이 한창인데, 고운 병풍은 쓸쓸히 비어있네, 서리내린 갈대밭엔 저녁기러기 내려앉건만, 옥(玉)장식의 거문고로 한껏 흥을 돋우어도, 들어줄 임이 곁에없으니, 버려진 연당에는 연꽃이 절로 시들어 떨어진다.)  26세의 꽃다운 젊은나이로 요절한 강릉출신의 여류 천재시인허난설헌(1563~1589)은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누이로서 이달 에게 시를 배우고,15세에 김성립과 결혼하였으나 부부사이가 뜻대로 원만하지 못하였다. 그이유는 낭군 김성립의 잦은 외도와 기방출입에 그까닭이 있음을 세인들은 잘 알고있다. 

나비가 봄의 전령이라면 귀뜨라미는 가을을 상징하는 친숙한 곤충이다. 귀뜨라미는 그소리가 특이하여 고독한사람들의 벗이되곤 한다. 그래서일까. 옛 시기에보면 외롭게지내는 여인의 정서나 고향을떠난 나그네가 귀뜨라미소리를 들으며 시름에잠겨 잠못이루는 애절한 정경이 글이나 문학, 세상이야기속에 자주 등장하는것을 보게된다. "밤이면 나와 함께우는 이도있어, 달이밝으면 더 깊이깊이 숨어듭니다. 오늘도 저 섬돌뒤 내슬픈밤을 지켜야합니다" (노천명 귀뜨라미)  이 시에서 보듯이 밤에우는 귀뜨라미는 문인들이 가을철의 서정으로 즐겨 다룬 소재였다. 인간의 외
로움과 고독, 슬픔을 진하게 담고있는 이 시를 보면서 덩달아 내마음도 허전해지는것은 왜 인지?......,밤깊은 시간(새벽1시), 저쪽 정원속 풀숲에서 울고있는 귀뜨라미소리를 들으며, 나도 시상을 꿈꾸는 문인이되어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가을의 감상을 지면위에 옮겨본다. 혼자서 글을쓰고
있는 서재 머리위 전구의 불빛이 졸음에겨운듯 하품을하고있다. 이 고독하고 호젓한 가을밤에, 세상은 적막속의 깊은 잠속으로 침몰되어있고 긴 밤을지키는 파숫꾼처럼 귀뜨라미와 나만이 오직 덩그란히 남아서 밤을 음미하며 교감을 나누고있다.   이러는중에 초가을밤은 속절없이 모든것을 
망각한체 새벽을향해 달려가고있다. 

귀뜨라미는 우리말로 귓돌이라도도한다. 앞다리에 소리를내는 매우 예민한 감각기관을 갖고있다. 소리를내는 빈도와 온도간에는 직접적인 관계가 있어서 온도가 올라가면 소리도 자주낸다고 한다. 선들바람이 이는 가을밤, 귀뜨라미소리를 들으며 책을읽는 맛도 그만이다. 유리창을뚫고 들려오는 그소리의 여운이 밤의적막을 깨며 내마음속에 와 절절히 박힌다. 뭐라고 표현해야할까?  누군가를 애타게 찾고있는듯한 소리처럼 들린다. 나는 문을열고 소리가 나는쪽으로 눈길을 보낸다. 귀뜨라미소리는 그렇게 계속되다가 새벽이가까워서야 잦아든다. 마치 내가 글을 쓰고있는 원고가 끝나기를 기다렸다는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