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의 칼럼 "힘들다고 하는데,내 마음먹기에 따라서

Submitted byeditor on목, 10/06/2016 - 11:16

인간의 삶, 즉 우리들의 인생을 말할때 어느사람들은 흥진비래(興盡悲來),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표현을 쓴다. 즉 흥겨움이 다 하면 슬픔이 찾아오고, 괴로운시간이 지나가면 다시 즐거움이 찾아온다는 의미의 말이다. 그 역(易)도 성립이된다. 고진감래면 다시 흥진비래 라는, 이처럼 세상의 모든일들은 돌고 돈다. 하지만 이같은 순환도 언젠가는 막을 내리게되어있다.

"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며 세상의 어느누구나 죽음이란 마지막순간을 맞이할수밖에 없기때문이다. 세상에서 흔히들 말하기를 우리들의 인생은 고해(苦海)라고들 말한다. 정말로 우리의 인생은 고해일가?  아니면 천상병 시인의 말처럼 인생은 소풍일까?  나의생각을 말하자면 둘다 맞는말이다. 즉 인생은 험한 바다처럼 힘든 삶일수도있고 소풍처럼 줄거운여행이 될수있다고.....그리고 고해든 소풍이든 그것을결정하는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라고........ 우리인생은 강물을따라 흘러가는 나뭇잎이나 물방울같다고도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모두가 바다에서 만나서 하나가된다고......요
즘의시대에 반영하여 말한다면 우리는 모두 고무보트를타고 래프팅하면서 강물을따라 내려가는 여행자들과 같다. 어떤 사람들은 래프팅을하면서 혹시 폭포라도 만나지않을까, 배가 뒤집히지나않을까 두려움과 공포에 쌓여 강물에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기를쓰며 노를젓고있고, 또 어떤이들은 웃고 즐기면서 재미있게 래프팅을하면서 내려간다.

똑같이 배를타고 내려가도 두려운가운데, 힘들고 지치며 강물을 거스리면서 내려갈수도있고 바위에 부딪치지만않게 조절하면서 즐거운여행을하며 내려갈수도있다.이렇게 어떻게 여행할것인가는 나의 마음먹기에 달려있는것이다. 

요즘세상을보면 여기저기서 사는것이 힘들고 경제가 어렵다고 많은사람들이 말하고있다. 남들로부터 이런소리를 듣지않아도 내가 먼저그것을 느낄수가있다. 얼마전 신문의 사회면에 어느가장이 샐활고를 비관한나머지 자식들과함께 자살을했다는 뉴스가 실렸다. 사는것이 얼마나 괴롭고 어려웠으면 산 목숨을 끊을수있을까? 하는 생각이들고 가슴이아프며 안타깝다. 왜 사람은 이렇게 괴로워하면서 살아가야 하는것일까?  

부처님은 사람이 살아가는것을 고해라고 했다. 어려서 부모의 그늘에서 살때는 느끼지못하다가 그 그늘에서 벗어나 세상에나와 자기자신과  가정을 책임져야하는 한 사람으로 살아가면 그 (괴로움의 바다)라는 말이 얼마나 적절한 표현이었는가를 절감 하게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어려움과 고통과 갈등,시련 다툼에 직면하며 그야말로 괴로움의 바다속
에서 허우적댄다. 물론 그과정에서 느끼는 행복감이 때때로 그 괴로움을 어느때는 상쇄시키지만,그래도 역시 산다는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제의걱정을 겨우 해결했더니 오늘 또다시 그보다 더한 걱정이 생긴다. 이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그것도 다 끝나지않을것만 같다. 세상에는 힘들고 어려운 역경과 시련,고통을 극복한 자랑스러운 위인들이 너무나 많이있다. 예수님이 그러했고, 공자님도 그러했으며, 많은땅과 나라를 정복한 징기스칸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말라 나는 9살때 아버지를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고 연명했고 목숨을건 전쟁이 내직업이고 나의 일이었다. ~중략~)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 겠다고 말하지마라,나는 목에 칼을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했다. 적은 밖에 있는것이 아니라 내만에 있었다.나는 거추장스러운것은 모조리 쏟아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그순간 나는 징기스칸이 되었다) 세상에는 편하고 쉬운일만 있는것이 아니다. 모든것은 자기자신이 극복하고 개선하고 투쟁으로 얻어내야한다. 모든것은 자신이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일체유심조(一切有心造)는 일체가 모두마음으로부터 생겨난다는 의미로 모든것은 마음으로부터 생겨나서 마음으로부터 사라진다는 말이다. 

이곳에 힘들고 어려운역경을 극복하고 성인(聖人)이된 공자님의 일생을 참고로 소개하여 드리겠다. 공자(BC551~479)는 평생을 참으로 힘들고 어렵게 살았다. 무당인 어머니 안징재는 자기보다 52세나많은 숙양홀의 첩이었다. 그나마 3년후 아버지가 세상을떠나자 본처인 시 씨에게 쫓겨나서 곡부로 옮겨가 살았다.

공자는 제대로된 교육을 받지못하고 자랐다. 3살때 아버지를 여의고 17세때 어머니를 여의었며, 19살때 송나라출신 여인과 결혼했으나 부인은 가난을못이겨 도망갔다. 이복형제인 맹피는 다리를저는 장애인이었다. 그는 먹고살기위해 창고지기,소 양치기, 등 온갖 험한일들을 마다않고 하며 살았다. 지금세상의 말로한다면 평생을 비 정규직으로 전전하다가 51세에 처음으로 벼슬자리에올랐다. 중도재라는 지방관리 벼슬이었다. 이후 소시공, 대사구등의 벼슬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공자는 당시 왕족으로 권력을 휘두르던 정치세력으로부터 견제를당하고 갈등을빚다 벼슬을 그만뒀다. 그때 그의나이는 55세때였다.

이렇게보면 공자가 공직에 재임했던기간은 고작 4년여에 불과했다. 이후 정치적포보도 좌절된것이다. 그로부터 14년동안 이나라 저나라를 방황하다가 노나라로 되돌아온것이 그의나이68세때였다. 아끼던 제자 안회를 그의나이 70세에 잃었고, 평생의 호위무사였던 아홉살어린 자로는 괴외에 의해 젓갈로 담가졌다. 그충격으로 공자는 이듬해 그이나이 73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공자의 위대함은 현실에서 고달프고 힘들음에도 불구하고 (도를닦고 덕을세우다가 곤궁에빠진다고해도 절의를 바꾸지않을것이다) 라고 했고, (남이 나를 알아주지못함을 걱정하지말고, 내가 남을 알아주 지못함을 걱정하라)고 한 말씀에서보듯이 그는 매일매일을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공자와 논어는 많은가르침을 주고있다.

그의 생활은 비록 곤궁하였지만 근면하고 열정적으로 학문을닦았었다. 모르는게있으면 누구에게라도 배움을 요청했다. 그의 삶은 역경을헤치고 살아온 인간승리이며 고난속에서도 그가 지키고자했던 인간의 도리들은 아직도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이되고있다. 날씨가 추워진뒤에야 소나무
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 는 그의 말처럼 생활이 힘들때마다 제대로 이해하고 적절하게 현대에 적용한다면 충분히 우리들의 삶에 나침판이 될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