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풍진 변호사] "12월은 가장 잔인한 달"

Submitted byeditor on금, 11/29/2024 - 17:56

[칼럼 = 하이코리언뉴스] = 옛날 태고적 내가 학생이었을때 배운 어느 시의 한구절이,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다” 라는 문구이었다. 이구절은, 시인 엘리엇(Eliot)의 “황무지 (The Waste Land)” 라는 명시의 첫줄이다. 난 무슨뜻인지도 몰랐고, 왜 이 구절이 그렇게 많이 인용되었는지 의아해 하며 지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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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봄 4월이면 긴긴 겨울에 죽었던 모든 생명이 부지런히 소생하는 가장 화려한 달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한것은 시인의 독창적이고 주관적인 관점이었다. 한걸음 물러가서 생각을 해보니, 그 관점이 틀리지 않다고 이해가 갔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수긍하고 인용을 하는것이다. 세상 만사는 이처럼 극과 극이 만나서 병행하면서, 묵묵히 돌아간다.  이러한 현실을 받아 들이면서, “April is the cruelest month” 라는 싯구절을 흔히 인용한다는걸, 나는 뒤 늦게 깨달았다.  

내가 이제 12월을 맞이 하면서 12월이 가장 잔인한달이라고 하는것도 같은 맥락이다. 12월이면 일년중 가장 즐겁고, 기쁘고, 생기가 넘치는 달이다. 오색이 춤추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곳곳에  걸려있고, 찬란한 니언불빛이 사방에서 번쩍이고, 명쾌한 캐롤선률은 공중에 가득차 있고, 샤핑백을 끓어앉고 상점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벅적거리고, 가족들이나 친구들 만날일이 빽빽한 즐거운 달이다. 더 나아가서, 지난 일년을 무사히 끝맞추고, 앞으로 닥아올 찬란한 새해의 그림도 그리면서 흥분에 차 있는 달이다.  

그런데 “가장 잔인한 달” 이라고 말하는 나 자신이 시인 엘리엇의 표현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흉내를 내고있다. 지난 일년을 돌아다 보니, 아무리 좋았던 일도, 가슴 아팠던 일도 다 지나간 일이고, 새해에 또 멋있는 일들을 시작하고 성취한다 해도, 12월이 돌아오면 그 또한 다 지나간 일이 될거니, 화려한 12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다. 영원한것은 이처럼 없다. 

어느 무엇이 영원히 유지된다면, 잔인하다는 소리는 안할거다. 시인 엘리엇은 이러한 진리를 깨닫고 “황무지” 라는 시를 썻다. 그렇다면, 우리 생활주변에서 과연 영원한것은 없나? 영원을 추구하는 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강력히 추궁하는게 사실이다. 엘리엇의 싯구절 보다 훨씬 더 오래됬고 훨씬 더 강력한 인간의 본능이다.   

지난달 미국대선에서 본것은, 인간이 열열히 추구하는것이 권력이라는 것이었다. 부를 추구하는것은 결국 권력을 얻기위한 과정이지 목적은 아니라는 것도 보았다. 부를 쌓고난 후에야 권력을 쉽게 얻는것을 우리는 목격하혔다. 허나, 그토록 힘들여 얻은 권력도, 그렇게 달콤한 권력도, 오면 가는것이니, 엘리엇의 4월같이,  또 나의 12월같이, 잔인한것이다.

솔로몬 왕이 어느날 보석공에게 반지를 하나 부탁하면서, 좋은 문구 하나를 새겨 넣으라고 명을 내렸다. 보석공은, “이 또한 지나 가리라 (This, too, shall pass.)” 라는 문구를 새겨넣았다. 솔로몬 왕은 무릎을 치고 “명언이구나!” 하고 보석공에게 후한 대가를 주었다는 얘기가 있다. 헌데 이건 항간에서 꾸준히 도는 소리이고, 바이블에는 그런 문구가 없다고 한다. 그래도 영국의 시인 핏쯔제랄드도, 미국의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도 이문구를 인용했을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이 문구를 솔로문의 명언이라면서, 사랑하며, 되새긴다.  

연말연시의 화려함도, 새해에 걸어보는 희망도, 지난달에 미국대선에서 참패한 아픔도, 애써서 얻은 최고의 권력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리고 그렇게 지나간다는 그것이, 지금 잔인하게 느껴진다.  12월은 잔인한 달이다.   

칼럼출처 : 김풍진 변호사 < pjkimb@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