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하이코리언뉴스] = “어디 가요?” 하고 한 친구가 묻길래, 로시니의 오페라 축제를 보러 페사로에 간다고 하니, 묻는이의 얼굴 표정이 굳는다. 하긴 로시니를 아는 사람도 드물지만, 페사로를 아는 사람은 더 없다. 그래도 좀 안다는 사람은 가장 가까운 도시를 대라고 해서, 플로렌스라고 하니 “아!” 하고 그건 알아 듣는다. 이 더위에 이태리를 가다니, 조금 무리이지만, 볼건 다 보아야지 하는 마음에서 근 일년전에 입장권을 사고 만사예약은 해놓았다.
로시니 (Rossini) 는 오페라계의 거장으로 1792년 페사로 (Pesaro) 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페사로에서 로시니의 음악 축제를 해마다 연다. 로시니는 39개의 오페라를 작곡했지만, 일반인에게 사랑받는건, “윌리암 텔의 서곡” 하고 “세빌리아의 이발사” 뿐이다.
또 다른 친구는 로시니를 들으려고 그 먼곳까지 가느냐면서, 이동네에서 언제던지 생 연주를 들을수 있다기에 나는 좀 의아해 했다. 그는, “동네의 어린이 병동에 가서 응급실을 찾아요. 아픈 어린이들이 대기실에서 빡빡 울어대는데 바로 그게 로시니 생연주 아닌가요?” 사실 로시니는 푸치니나 베르디 같히 우리 귀에 얼른 와 닿는 선률이 아니다.
오페라는 죽어가는 예술이고 누가 그런걸 보느냐고 하지만, 각 오페라 하우스는 표가 항상 일년전부터 매진된다. 표를 파는 날짜와 시간이 발표되면, 모두 언라인으로 입장표를 산다. 언젠가 한번은 어느날 10시 부터라고 해서, 그날 10시를 꼽박 기다렸다가 들어가 보니 표가 매진이었다. “무어라고?!” 화를 내면서 겨우 꼬투리 자리표를 사고 보니, 유럽시간 10시이지 우리 미국시간 10시가 아니었다.
오페라 관람객은 전인구의 3% 이고, 녹음이래도 즐기는 사람은 18% 라고 하니 절대로 죽어가는 예술은 아니다.
나는 이 무더위에, 비행기, 기차, 택시, 버스를 타고, 오페라 하우스에 시간마추어 도착했다. 2,000 여석이 다 찾고, 어쩌다 화제를 하게된 미국에서 왔다는 관람객은 지난 40년간 한번도 걸르지 않고 참석했고, 또 한사람 역시 미국에서 10년간 한번도 걸르지 않고 왔다고 했다. 로시니 생연주는 나에게 일생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지만, 세상은 과연 넓다고 다시 느꼈다.
공연된 곡은 에르미언느 (Ermione) 라고 트로이 전쟁후에 일어나는 비극으로 쉽게 즐길수 있는 곡은 아니었다. 30 시간 정도의 여독이 풀리지 않은채 시원하고 컴컴한 공연장은 잠이들기 안성 마춤이었다. 옆에 앉은 동생이 5분에 한번씩 팔뒷꿈치 공세를 놓는 바람에 잠도 제대로 못자고, 로시니의 오페라축제를 마추었다.
로시니를 뒤로하고, 우리 일행은 르네상스의 출생지인 투스카니 지역을 방문했다. 르네상스의 출생지가 바로 “자기네 도시”라는 학자들의 각 의견을 흥미롭게 듣고, 결국 플로렌스를 중심으로 돌아보기로 했다.
“르네상스 하면 마이켈안젤로” 할정도로, 마이켈안젤로는 그림, 조각, 건축등, 수많은 예술작품을 남기었다. 그의 대표작 그림으로는 “Pieta” 로 십자가에서 방금 걷우러 내린 예수의 시신을 성모마리아가 무릎에 올려놓고 있는 그림이다. 조각으로는 홀랑벗은 데이빗의 나체조각품이 대 인기이다. 그러나 그의 걸작은 씨스틴 채플 내부벽과 천장에 그려놓은 성경의 책한권 이야기이다.
구약 성경의 얘기를, 천지 창조에서부터 아담과 이브의 만남, 등등을 거대한 바티칸 성당의 천장과 내부벽에 담았다. 총천연색 화면은 그 규모와 다양성으로 어느누구도 감탄을 금하지 못한다. 그는 1564년에 89세로 세상을 떠났으나, 그의 작품은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보다 더 거장인 르네상스 화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다. 그의 “모나리사” 초상화와, “최후의 만찬” 은, 그 화법을 아무도 못 따라간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모나리사의 얇은미소는, 그생동하는 신비로움에, 관람객이 넋을 잃는다. 다빈치는 화가이자, 조각가, 건축가, 음악가, 시인, 과학자, 등등의 진정한 “르네상스 맨” 이라고, 소위 팔방미인으로 다방면의 천재이다.
르네상스는 인간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마음에서, 자유를 추구하는 마음에서, 진실을 추구하는 마음에서, 1400년 말엽에 불같히 일어난 추세이었다. 억지로 눌러놓았던 인간의 본심과 자유를 찾으면서 그 기세가, 화폭과 조각상에서 뿐아니라, 건축, 음악, 문학, 과학, 철학, 경제, 정치등 인간생활 모든면에 혁명을 불러일으키었다. 진실에는 힘이 있듯이, 이 운동은 유럽을 전세계의 강력한 힘의 지역으로 발전시키어 오늘날까지 세계를 움직이는 주역이 되었다.
오페라이건 르네상스이건, 나는 서양의 문화적 유산의 아름다움과 다양하고 거대한 규모에 부러움을 느꼈다.
칼럼출처 : 김풍진 변호사 < pjkimb@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