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풍진 변호사] "이공학과 인문학과 대한민국"

Submitted byeditor on목, 03/28/2024 - 10:27

[SF = 하이코리언뉴스] = 지난 3월 10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7개 분야의 상을 휩쓸은 영화가 “Oppenheimer” 라고, 원자폭탄을 인류 역사상 최초로 제작한 미국의 물리학자 이름이다. 이 원자폭탄은 우리나라 역사에도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나는 서슴치 않고 극장으로 달려가서 그 영화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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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오펜하이머 (Oppenheimer) 에 관하여, 사실에 충실했고 영화계의 최고상을 받을만 했다.  이 주인공은 뉴욕의 부유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나서 하바드대학을 졸업하고, 영국과 독일의 물리학계에서 초대를 받고 지내다가 버클리에서 Quantum Physics (퀀텀 물리학) 을 가르키었다. 퀀텀 물리학이란 “양자역학”이라고 사전에 나와있지만, 이해하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않는다. 퀀텀이란 라틴어로 “얼마나” 인데, “얼마나 물리학” 이란 단어가 더쉽게 이해할것같다. 즉 어느 물체나 분자들이 얼마나 힘을 갖고 있나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만 수박 겉핧기 만도 못하게 알고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오펜하이머는 우리주변에 널려있는 사소한 물체에서 힘을 창출해 낼수있고, 그 힘을 합하고 (fusion) 쪼개는 (Fission) 과정에서 창출된 새로운 힘을 이용하여 엄청난 핵폭탄을 만들수 있다는 학설을 발표했다. 1941년에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을 습격하자, 미국에서는 오펜하이머의 학설을 믿고 원자폭탄을 꿈꾸게 되었다. 뉴맥시코 허허벌판에 극비 연구소를 설치하고, 오펜하이머를 연구 소장으로 임명하면서 “맨하탄 프로젝트” 라는 명칭하에 원자폭탄 제작에 들어갔다. 

엄선한 정예 과학자와 직계가족 3,000 명이 뉴맥시코의 외진곳에서 희망과 절망, 성공과 실패,우의와 배신, 사랑과 증오등의 극과 극이 엇갈리는 속에서 만 3년만에 원자푹탄을 제작하였다. 이 폭탄의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하게 엄청난것이 증명되었다. 

트루만 대통령은 이폭탄을 주저없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떨어트렸다.  1945년 8월이면 나찌도 항복했는데 일본만이 “죽어도 항복안한다” 는 선언에 내린 결정이었다. 일본의 민간인 약 25만명이 핵폭탄 열에 타 죽고난 후에야 일본은 항복을 했다. 우리나라도 드디어 해방이 되었다. 

지구상에서 무적이라고 자부했던 오만한 일본도 항복이라는 굴욕을 맛보게한 퀀텀 물리학이 무엇인가? 해방 직후부터 우리도 과학이라는 지식의 중요성을 깨닫고, 공과대학이 생기었고, 야심에 찬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수백년, 아니 수천년 동안,우리가 몰랐고 또 알았어도 무시해왔던 과학, 수학, 공학, 기술, 발명, 발견, 제작등 실학하고는 등을대고 살아왔다가, 우리도 눈을 떴다.    

반면에, 우리는 철학, 역사, 문학, 가무, 그림등 예술방면은 중요시 해왔다. 특히 중국한자 풀이는 온 국가와 국민이 오로지 단하나의 학문으로 알고 살아왔다. 결국 한자를 알아야 과거에 급제했고, 과거에 꼴찌래도 급제해야 인간다운 생활을 하였으니 한자공부 이외에 모든 과학적 공학적 이론이나 학설을 무시했던 것이 우리의 과거이었다. 더 나아가서, 공인이나 장인들을 미천한 인간으로 멸시하는 사회제도에, 아까운 인재들과 귀한 발명품들이 많이 희생되었다.  

예를들면, 다산 정약용 (1762 부터 1836) 은 과학자이자, 발명가이자, 엔지니어이자, 문학자이자, 훌륭한 정치가이자, 즉 인간의 보배중 보배이었다. 우리의 삶을 편하게 만든 기구나 기계들을 여러개 창작하고 손수 조립해낸 분인데, 결국 한지에 유배나 가게되었고 집안은 곤경에 빠지고 말았다. 정약용 이외에도 우리 역사에 뛰어난 과학자가 있었고, 서양 과학문명에 맞먹는 학설이 있었는데, 우리조정에서는 그들을 천대시하고 귀양이나 보내는일 밖에는 못했다. 그런 정치적 사회적 환경에서 체계적인 과학의 발전은 불가능 했고, 결국 한자풀이로 폼잡는 학자들에게 다 밀려났다. 

그러면 과연 과학자들이 과학밖의 분야에는 문외한으로 무시 당할만 한가? 그 아름답고 멋있는 인문학과 예술계통에는 깜깜하고 무식했나? 오펜하이머 자택에는 밴고호와 쎄잔느가 걸려있고, 그는 5개국이상의 외국어에 능통했고, 시를 좋아했다. 상대성 원리의 원조인 아인스타인은 자신이 바이얼린 연주자이자 피아노도 쳤고, 모짜트와 바흐를 심취하였다. 

그는 죽음은 맞이할수 있지만, 모짜트와의 헤어짐은 힘들다고 했을 정도로 음악을 사랑했다. 중력을 발견한 과학자이자, 물리학자, 수학자인 아이색 뉴턴도 월등한 화가이었다. 망원경을 발명하여, 지구밖의 행성들을 처음으로 관찰한 갈릴레오는 시인이었다. 과학자, 발명가, 엔지니어, 실학자, 공인, 장인들은 미천한 인간들이 아니며, 예술에도 조예가 깊은 인간임을 증명해주는 사실들이다.   

우리는 중국한자풀이의 만능시절을 다시는 겪지않기 바란다. 지금 우리나라는 이공계 지식과 기술면에서 세계적인 수준으로 앞장서 가고있다. 언젠가 우리 조국에서도 오펜하이머 같은 과학계의 선구자가 나올수 있기를 바란다.  

칼럼출처 : 김풍진 변호사 < pjkimb@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