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하이코리언뉴스] = 지난달에 "해외여행" 이라는 제목으로 나는 나의 칼럼을 정중히 "하이 코리언" 신문사에 제출했다. 신문사 사장님이 곧 전화를 하셨다. “변호사님, 컬럼을 AI로 한번 훑어보니 철자법과 문법이 34개나 틀렸어요.”

나는 더듬거리며 물었다. “뭐라고요? 제 한글 철자법이 틀렸다고요?”
충격을 받은 나는 더 이상 말문이 막혔다. 한글은 나의 모국어이고, 철자법은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배웠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 수십 년을 살다 보니, 한 페이지 반 정도 되는 글에서 틀린 철자와 문법이 무려 34개나 나왔다니, 어이가 없었다.
아니면 사장님이나 AI가 맥주 한잔을 하신 것은 아닐까? "언어는 살아서 생동한다"고 늘 외치고 다니던 내가 정작 모국어의 철자법 변화에는 뒤처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살아온 것이다.
그동안 “날자"를 “날짜"라고 쓴다는 것 정도는 겨우 배웠지만, 그것도 처음에는 상당히 거부감이 들었다. 변화가 싫었던 것이다.옛날 우리 부모님께서 쓰신 글을 보고 배를 잡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 부모님들도 그 시절 고등교육을 받으신 분들인데, 한 세대가 지나고 나니 개정된 철자법과는 거리가 멀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웃음거리가 된 셈이다. 영어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오래된 철자에서 불필요한 글자를 빼고, 보다 간단하게 쓰는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다.
예를 들면 “Doughnut"은 “Donut"으로, “Colour"는 “Color"로, “Mould"는 “Mold"로, “Labour"는 “Labor"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언어의 철자법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이다.
철자만 변하는 것이 아니다. 단어의 뜻도 변해간다.
“Cool"이라는 단어는 원래 온도의 상태를 표현하는 말로 “시원하다"또는 “서늘하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Cool!”이라고 하면 ‘멋지다!’, ‘좋다!’, ‘잘됐다!’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온도와는 전혀 관계없는 뜻이다.
언어는 정말 살아서 생동하고 있다.
우리 한국어 표현도 우리가 알게 모르게 계속 변하고 있다. 세계의 다양한 문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우리의 표현과 단어도 더욱 빠르게 바뀌고 있다.
예를 들어 "놀러 간다”, "휴양을 간다"라는 우리말 표현이 있는데도 요즘은 ‘바캉스를 간다’고들 한다. 그런데 "바캉스(vacances)"는 영어도 아닌 프랑스어다. 영어가 우리말에 많이 침투해 들어온 것도 모자라 이제는 프랑스어까지 우리말 속에 자연스럽게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한국에 가서 찍어 온 사진을 미국인 친구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
그 친구가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한국에서 찍은 사진이 맞아?”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사진 배경에 나온 간판들이 거의 모두 영어였기 때문이다. 나도 그 사진이 명동의 번화한 상가에서 찍은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고 나서야 새삼스럽게 느꼈다. 아닌 게 아니라 상점 간판 대부분이 영어로 되어 있었다.
하긴 몇십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간판에는 중국 한자가 흔하게 사용됐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중국의 한자 표기법을 사용해 왔다. 그러다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시면서 우리는 중국의 문자에서 벗어나 우리 고유의 문자를 갖게 됐다. 표기법에서는 해방됐지만, 우리의 표현 속에는 아직도 한자어가 많이 남아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고유한 말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채 사라지거나 밀려난 것은 아쉬운 일이다.
이제는 또 서양 문화에 익숙해지면서 서양의 단어들이 우리말 속으로 빠르게 들어오고 있다. 아마 이것 역시 언어가 살아 움직이는 모습일 것이다.
영어권에서 가장 권위 있는 사전 가운데 하나인 ‘옥스퍼드 영어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도 시대에 따라 새로운 단어와 의미를 꾸준히 추가하고 수정한다. 언어는 한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계속 진화한다.
언어는 태어나고, 성장하고, 때로는 사라진다. 이러한 현상은 어느 나라의 언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러니 태고적에 배운 나의 철자법이 시대에 맞게 고쳐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 사실을 모르고 화부터 버럭 냈으니, 내가 너무 고집을 부린 모양이다.
이제는 나도 시대의 변화를 조금씩 받아들여야겠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언젠가는 여행 가방조차 들고 갈 필요 없는 먼 곳으로 떠날 날이 다가오고 있는 모양이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살아 있는 언어와 함께 나도 조금 더 살아 움직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