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거 뮤지엄 Kreeger Museum

Submitted byeditor on금, 05/27/2016 - 21:49

‘워싱턴의 진주’... 아담한 미술관에 아트의 ‘정수’ 모였다
혹시 주말에 워싱턴 DC의 뮤지엄에 나가 느긋하게 예술 감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주차 전쟁과 더불어 관람객 인파에 밀려다닐 것을 염려하여, 집 근처 공원이나 걷지 하고 포기한 경험이 있다면, 이 미술관을 고려해 볼 만하다. 그리 크지 않은 아담한 미술관에 모던 아트의 정수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을 뿐 아니라, 건물도 정원도 그리고 조각 공원도 재미에 한 몫을 더해 주는 곳이다. 조지 워싱턴 대학가의 북서쪽에 위치한 이 미술관은 포토맥과 대사관 동네 사이쯤에 위치한 꽤 괜찮은 부자 동네일 뿐 아니라, 주변의 유니크한 벽돌로 지어진 개성적 주택들로 인해 ‘역사적인 기념 장소’로 등록된 동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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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istide Maillol Pomona(Pomone)(왼쪽), 크리거 뮤지엄 전경. “All Image right reserved in Kreeger Museum”(오른쪽 위).

미술관에서 콘서트가 
크리거 뮤지엄에 들어서면서 뮤지엄이라기 보다는, 그저 꽤 잘 사는 집에 들어가는 정도의 느낌이다. 아닌 게 아니라, 크리거 부부가 살던 이 집은 입구부터 심상치 않다. 대단히 호사로운 주택은 아니나, 반복되는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인해 현대 미술적 감각 뿐 아니라 음악적인 리듬감마저 주고 있다. 한두 가지 주제가 변주되는 고전 음악처럼, 이 건물은 몇 가지 기본 구조가 변형 반복되고 있다. 사실 아마추어 음악가 였던 이 부부는, 미술품을 모으기 시작했을 때 투자가 아닌 순수한 열정과 기쁨으로 작품을 선정하였고, 일관적으로 색채와 질감, 그리고 구도에서 오는 음악적 요소, 즉 정신적이거나 추상적인 순수함으로 전체 조화를 고려하였다.

미술관 로비에 놓인 그랜드 피아노가 말해 주듯이 이들은 종종 집에서 콘서트를 열곤 하였다. 음악, 회화, 조각, 그리고 건축물, 그리고 5.5에이커나 되는 자연을 즐기는 것. 그것이 그들의 삶 가운데 누리고자 했던 심미적 특권이었고, 이 미술관은 방문객이 그것을 느낄 수 있도록 기획전과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창립자의 뜻을 따라서, 예술과 건축과 음악을 동시에 즐기는 것이 미술관의 미션이기도 한데, 이에 발맞추어, 교육 프로그램, 강연, 패널 토론, 콘서트, 그리고 전시가 짜인다. 5월에도 퍼포먼스와 와인 시음회를 하는 문화행사가 기획되어 있다.(www.kreegermuseum.org/참조)  이 미술관의 유일한 단점은 워싱턴의 다른 스미소니언 미술관과 달리 입장료(어른 10불, 학생이나 시니어는 7불, 12살 아래는 무료)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여는 시간조차 많지 않다. 금, 토는 10시에서 4시 사이에 아무 때나 갈 수 있으나 화, 수, 목은 10시 반이나 1시 반 투어에 예약을 하고 가야 한다. (202-338-3352 또는 visotorservices@kreegermuseum.org로) 

샤갈, 뭉크 등 거장들의 작품 전시
크리거 뮤지엄은 1994년에 문을 열었다. 이 건물은 건축가 필립 존슨과 리차드 포스터에 의해 1963년에 디자인 된 것으로 워싱턴 DC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숲으로 둘러 싸여 있다. 디렉터가 전하는 뮤지엄의 성격은 조용하고 명상적인 그래서 개인적인 예술 공간이다. 건물을 증축할 계획도 없다하고, 그저 한 번에 제한된 숫자의 관람객이 와서 즐기고 배우고 가는 장소이길 원한 것이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워싱턴 DC 안에서 진주같이 귀한 곳이 아닐 수 없다. 주변 저택 구경과 괜찮은 레스토랑들도 많으니 주말 행으로 잡아 볼 만하다. 이곳에는 어떤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을까? 그랜드 홀을 지나 조각 공원으로 나가는 첫 번째 햇볕이 쏟아지는 방에는 주옥같은 인상파 거장들, 보나르, 부댕, 그리고 모네의 작품들을 맘껏 만날 수 있다. 

유리창을 통해 바로 옆의 덱에 전시된 한스 아르프나 헨리 무어들의 거장의 조각들과 어우러져 이 방에서 마냥 머물고 싶은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다시 홀로 나와서 보면, 스미소니언이나 허쉬혼에서 조차 귀하게 볼 수 있는 피카소와 그의 친구 브라크, 그 외 20세 초 현대 미술의 거장들 세잔, 샤갈, 뭉크, 베크만, 뒤뷔페 등이 상설 전시되어 있다. 칸딘스키, 후앙 미로와 클레의 작품은 좁은 복도에 걸려 있는데, 이 작가들이 추상적인 미술, 즉 선과 색만을 가지고 리듬의 반복과 변주로 미술에서의 음악적인 속성을 드러낸 것으로 유명한데, 이 미술관의 전체 철학과 근사하게 걸맞아 보인다. 

20세기 모던 아트의 교실 
지하로 내려가면 20세기 후반의 미국미술-이 시기의 미술을 20세기 전반의 유럽의 모던아트와 구분하여 컨템퍼러리 아트라고 명칭한다-을 좀더 널찍한 공간에서 접할 수 있다. 한스 호프칸이나 아쉴 고르키 같은 뉴욕 화파 추상 표현주의 1세대는 물론, 프랭크 스텔라나 바넷 뉴만 같은 2세대의 미국 색면 추상작가들이 반기고 있다. 중간 중간에서 만나는 로댕, 칼더, 브랑쿠시, 데이비드 스미스의 실내 조각품들로 인하여, 20세기 모던아트 수업이 이 뮤지엄에서만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할 만큼 골고루 갖추고 있다.  2층의 덱을 통해 실외 정원으로 나가면 군데군데 야외 조각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마이욜의 고전적인 여인상과 죠르즈 리키나 파올로 솔레리 같은 현대 조각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데, 특히 이 후자들은 주변의 나무들의 수직선과의 시각적인 어우러짐을 고려했음이 분명하다. 조각 공원은 아직 공간이 널찍이 있고 앞으로 구입 확장하고자 하는 계획도 공고판이 조각공원을 나서는 이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제한적이긴 하나, 아프리카 조각, 아시아 불상들, 로마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 작품들 또한 전시되어 있어, 모던 아트 초기의 서구 미술가들에게 영향을 준 비서구 문명의 일면을 비교할 기회를 준다. 마지막으로 앙소르, 고틀리프, 그리고 후앙 미로의 빼어난 프린트 컬렉션을 볼 수 있다. 전부가 전시된 것은 아니고 아카이브에 일부 보관된 이 프린트는 수작들로서 바르셀로나에서 찾기 힘든 컬렉션이다. 

현대미술관의 경향은 쉬는 공간
이 미술관을 나서면서 드는 생각은 미술관의 기능이다. 이 칼럼 시리즈 첫 편에서 미술관이 18세기 초창기부터 정치적이었다고 했지만, 미술관의 기능은 확대 재정립되어 왔다. 
현대 미술관이 추구하는 기능은 무엇일까? 요즘 새로 건립되는 미술관들은 친환경적이고 ‘쉬는 곳’을, 그래서 생각할 수 있는 장소를 지향한다. 삶이 너무 바쁘고 도시화되어 가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그런 추세 가운데 그 선두 역할을 한 80년대 만들어진 독일의 인젤 홈브로이 뮤지엄에서의 기억이 뚜렷하다. 한 번도 쉰 적이 없었던 것 같이 바삐 살던 30의 나이에 그곳을 방문했던 필자는 갑자기 삶이 정지된 것 같은 휴식과 기쁨을 누렸었다. 섬 전체가 뮤지엄으로 자연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쉼의 공간인 그 곳은, 한국 원주에 있는 한솔 뮤지엄의 모델이 되었다. 이 두 뮤지엄 또한 평생 꼭 가보라고 권할 만한 미술관들이고, 크리거 미술관은 아주 작은 규모이나 그러한 트렌드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주소 2401 Foxhall Rd NW, Washington, DC 20007  <이정실 미술사가 WUV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