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코리언 뉴스] “목사님, 설교가 잘 안 들립니다. 거의 반도 못 들었습니다.” 몇주 전 새교회에서 예배 후 많은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새교회 음향시스템이 아직 적응이 안됐습니다. 강단에서 설교하는 동안 제 나름대로 온 힘을 기울여서 설교를 했는데 반도 못 들으셨다니 안타까웠습니다. 오늘 설교를 다음 주에 다시 할까 했더니 그 정도는 아니랍니다. 순간 미안했습니다. 예배 시간 내내 안 들리는 걸 들으시려고 애쓰던 표정들이 떠올랐습니다. 기도 시간에 다른 자리로 바꾸면 들릴까 움직이던 모습들이 생각나면서 미안했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저는 저 나름대로 신나게 설교를 했으니 참 민망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분명 마이크 소리는 컸는데 왜 안 들렸을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얻은 답은 간단합니다. 소리가 크다고 들리는 것이 아니로구나. 아무리 소리가 커도 들리지 않으면 그냥 소리로 끝나는 것입니다. 메시지가 되려면 잘 들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리의 음량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소리의 초점과 균형이 맞춰져야 들리는 것입니다. 이때 비로소 소리가 들리고 그것은 메시지가 되는 것입니다.
소리에 대한 단상을 인간관계에 대입해 보았습니다. 가장 가까운 부부간의 관계를 봅시다. 이전에 연애할 때는 소리도 필요 없었어요. 그냥 눈빛만으로도 통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서로 잘 통하지 않습니다. 속으로 참고 있던 남편이 폭발하여 아내에게 한소리 합니다. 이에 질세라 아내도 남편에게 잔소리합니다. 서로 자기 뜻을 모른다고 소리소리 지르면서 답답해하지요. 점점 더 소리가 높아지고 언성이 사나워지고 나중에는 아예 소리가 끊어집니다. 서로 포기한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마찬가지예요.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하루에도 수없이 말합니다. 안 들릴까 봐 소리를 높이고 그것도 안 들릴까 봐 소리를 지릅니다. 두 번 세 번 계속합니다. 그래도 자식들은 부모 말을 못 알아 듣습니다. 언제부턴 가는 아예 부모 소리가 지겹다고 방문 닫고 자기 방에 들어가 버립니다. 거실에 적막함만이 덩그러니 남습니다. 서로 간에 소리가 끊어진 가족들이 하숙생처럼 한집에 모여 살 뿐입니다.
소리가 막히면 소통이 끊어지고 소통이 끊긴 결과 관계가 단절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소리가 열려야 소통이 시작되고 소통이 시작돼야 관계가 회복됩니다. 결국, 문제의 발단과 해결의 실마리는 소리입니다. 이처럼 소리가 우리에게 참 중요합니다.
따라서 올바른 소리를 내려면 균형 있는 소리를 내야 합니다. 내 입장만 고집하는 소리는 균형이 깨진 것입니다. 아무리 크게 소리쳐도 상대방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그냥 탈곡기에서 나오는 소음입니다. 부부 사이에 자기 관점에서만 소리를 내면 아무도 못 듣습니다. 목만 아픕니다. 지치고 짜증만 납니다. 대신에 균형 있는 소리를 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입장에서 소리를 내고 아내는 남편의 입장에서 소리를 내야 합니다. 부모는 자식의 입장에서 소리를 내고 자녀는 부모의 입장에서 소리를 내보는 것입니다. 서로가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려서 소리를 내면 비로소 들립니다. 저 사람이 내 소리를 내는구나 하면서 귀가 열리는 것입니다. 곧 마음이 열리고 관계가 열리는 것입니다.
올바른 소리를 내려면 초점 있는 소리를 내야 합니다. 항상 초점을 지금에 맞춰야 합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옛날 일을 끄집어 낼 때가 많습니다. 먼 미래까지 순간이동을 해서 모두를 절망에 빠트리지 말아야 합니다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대상에만 초점이 맞아야 합니다. 이것저것 다른 일과 연관 지으면 듣는 사람은 숨 막히게 됩니다. 다른 사람과 연관 짓지도 말아야 합니다. 했던 말을 무한 반복하게 되면 초점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한 두 번 말하되 짧게 말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요점이 뭐냐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소리의 초점이 사라진 결과입니다.
“말은 하기 쉽게 하지 말고 알아듣기 쉽게 하라,” 는 말처럼 우리 모두 서로 잘 알아듣는 소리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잘못된 소리를 해서 다른 사람의 마음과 관계를 깨트리지 않았는지 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균형과 초점 있는 소리로 소통하기를 바랍니다. 건강한 관계로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이 모든 것이 작은 소리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2016년 1월 15일 김호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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